나의 창작시

고사목 앞에서

신사/박인걸 2021. 6. 13. 19:25

고사목 앞에서

 

백골만 앙상한 가슴은

비 오는 날에도 우두커니 서서

쏟아지는 빗물을 쫄딱 맞으며

잃어버린 시간들의 기억까지 잊었다.

수만 가지를 사방으로 뻗어

억만의 잎을 하늘위로 쏟아 부으며

굵은 나이테를 만들기 위해
한 번도 눕지 못한 채 휘청거렸다.

밤하늘 별 보다 많은 시간들을

오로지 거목의 꿈 하나에 전부를 걸고

치솟는 패기를 오장육부에 쏟아 부었다.

시름시름 앓던 시간들이

어느 날 전깃줄처럼 끊어지던 날

잎과 껍질을 모두 벗겨가고

일어선 채로 고사목이 되었다.

유령처럼 흐느적대는 고사목을 보면

머잖아 들통 날 내 신세 같아 씁쓸하다.

오늘은 쏟아지는 햇살도 차갑다.

202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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