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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야기
맨 발로 언 땅을 딛던 종달새가
파란 풀잎을 물고 꽃송이에 몸을 비빈다.
어느 봄날 발을 헛디뎌 깊은 수렁에 빠져
헤쳐 나오려 허우적거리다
목련 꽃 잎처럼 떨어져 가버린
당신의 애처로운 눈빛 같은 아지랑이가 어른거린다.
태산도 짓누를 빚더미에 경추를 눌려
사족이 묶인 채 어느 골짜기에 주저앉아
유배 자처럼 제한되었던 생애마저
무참하게 짓밟혔던 그 잔인한 기억에도
뿌연 연무를 일으키며 봄은 왔다.
할미꽃 무덤가에서 딸네 집을 굽어보고
살구꽃 곱장소(沼)굽어보며 피던 날
아리랑 구슬픈 가락 산 메아리에 태워
어느 하늘 너머로 날려 보내시며
하루하루를 버거운 빚짐을 벗어버리려
날선 도끼로 세월을 쪼개시던
당신의 일그러진 손마디를 나는 보았다.
자신의 꿈을 전당포에 맞기고
오로지 아르파공(Harpagon)의 코뚜레에 끌려
세월을 도둑맞았던 당신의 가엽은 얼굴을
나는 심장 언저리에 인화(印畵)하였다.
몇 번의 봄은 잠금장치를 녹슬게 하고
패스워드마저 모두 빼앗아버렸다.
영화 화면처럼 어이지는 세상 사연들은
당신의 이야기마저 흑백영화가 되었다.
진달래꽃이 봄바람에 정신이 혼미하던 날
나는 당신 화면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20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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