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도시의 어떤 거리

신사/박인걸 2020. 4. 3.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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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어떤 거리

 

수천 개의 작은 태양이 밤 하늘에 내 걸리면

한 낮의 치열함을 조용히 덮는다.

생존을 위한 전장(戰場)을 그토록 누비던 병사들이

일몰에 잠시 숨을 고르는 도시는 아늑하다.

각진 모서리에 몸을 베이며 울던 바람도

달리는 차량의 꽁무니를 따라 한적한 곳으로 떠났다.

저 밤거리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지나간 하루 동안 전대(錢臺)를 얼마나 채웠을까

톰크르주가 맨손으로 더듬던 빌딩을 헤집고

어깨를 부딪치며 종종걸음으로 얻은 수익이

심장과 허파 사이를 뿌듯이 메웠을까.

 

시침(時針)이 발뒤꿈치를 바짝 따라 올 때

도망치지 못하는 중년은 불안하다.

양 어깨에 짊어진 무형(無形)의 배낭에는

신경을 찌르는 송곳들이 가득 실렸다.

좌판에 낙지의 다리를 자르는

무딘 손가락의 아낙네는 몇 년을 견디어냈을까.

비틀거리며 떨어진 밤별을 줍는

어떤 상인의 아내는 제주인의 모습을 알고 있을까

 

밤늦게 택시 정류장에 줄지어 늘어서서

시간을 돈과 바꾸는 기사의 마음을 누가 알까.

약삭빠른 사람들이 훑고 지나간 어장에서

피라미들을 주워 담는 어느 아낙네처럼

젖은 손으로 설음을 주워 담는 노파가 가엽다.

도시는 대낮에만 그늘이 드리우지 않는다.

한 밤에도 짙은 그늘 드리운 어떤 거리에는

애틋한 바람이 불고 있다.

20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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