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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獨白)
시인/박인걸
참 멀리도 왔다.
타원체의 가장자리를 따라
흘러 흘러 돌아온 세월이었다.
물레노래를 부르다 베틀 노래를 부르다
때로는 삼 삼기 노래를 불렀다.
말 등에 앉아 채찍질 하며
그토록 뒤쫓아 온 것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무 보람도 실속도 없는 허상을 찾아
두 손이 움켜쥔 것은 흑싸리 껍데기 뿐이다.
흐뭇함과 흡족은 일순간이었을 뿐
늘 심장과 허파를 채우지 못했고
해 아래서 수고하여 얻는 결실은
허물어질 돌담에 지나지 않는다.
해와 달과 별은 점점 빛을 잃고
거리에는 창들마다 검은 커튼이 쳐지고
정수리에 흰 비둘기 날아와 노래를 부른다.
아! 벌써 오후 다섯 시가 지났다.
서산에 해가 걸렸으니 드러눕고 싶으나
아직도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으로
저녁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20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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