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그 봄이 오면

신사/박인걸 2020. 3. 13.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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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봄이 오면


계절이 흘러도 계절 밖에서 사는 사람은

가슴에 만년설이 쌓인다.

봄을 느껴본 것은 아득한 신화의 모서리였고

겨울과 겨울 사이는 언제나 나에게서 삭제되었다.

내가 기댈 언덕은 하늘뿐이었고

내게서 도망치는 운명을 붙잡지 못했다.

삶은 조화를 잘 이룬 인체 비례의 카논이 아니다.

해독(解讀)이 까다로운 파블로 피카소의 화판이다.

이항대립의 모순구조는 원시부터 존재하고

무차별적 무한경쟁은 약자가 먹잇감이다.

기회, 자본, 재능, 지식의 불균형은

없는 자가 있는 것까지 빼앗겨야 했다.

계층상승의 사다리가 없는 사회는

풍족(豐足)한 자만 언제나 살이 찐다.

겨울만 사는 사람은 항상 빈털터리다.

부여잡을 것 없는 축축한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가라앉는 암사슴이다.

하지만 하나도 서럽지 않다.

추운 계절도 잘 적응하면 여름이 되고

자족(自足)의 비결은 빈주머니도 채우며 산다.

가슴깊이 동상(凍傷)자국이 몇 개 있지만

그 봄이 오면 새 살 처럼 치유될 것이다.

20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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