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해빙(解氷)

신사/박인걸 2020. 3. 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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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빙(解氷)

 

 

햇살은 화살처럼 쏟아지고

바람은 헤픈 여자처럼 쏘다니다

어느 양지바른 언덕에서 숨을 고른다.

잡목 뒤얽혀 너부러진 숲은

라이프니츠의 미적분만큼 풀기 곤란해도

잔설(殘雪)마저 녹아내린 음지에는

화투장 홍단이 발그레 웃는다.

유지와 증진을 위한 발길이 짓밟은

비 양심에 굴복된 가파른 능선에는

늙은 비닐봉지들이 펄럭이지만

가랑잎 비집고 당당하게 치미는 풀꽃은

끈질긴 생명(生命)의 촛불이다.

겨우내 결빙(結氷)이던 이 단단한 억지는

오늘에야 이상한 해방감에 녹아내린다.

삶이 투박한 나사처럼 조여 올 때

가슴은 막다른 골목처럼 닫아걸었다.

나는 이데오로기에 매몰 되거나

아나키즘으로 무장한 사람이 아니며

상식을 따르는 엔간한 존재에 불과하다.

극단의 미궁에서 허우적대며

정체를 구분 못하는 우맹이 아니다.

워낙 단단한 나만의 신조(信條)

단단한 밧줄로 영혼을 옭아맸을 뿐이다.

하지만 스스로 굵은 밧줄을 푼다.

발그레 웃는 봄꽃 한 송이에

만년 빙하가 내 가슴에서 허물어진다.

202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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