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나의 창작시 1400

그곳

그곳 살구꽃이 지던 밤 소쩍새 사연 하늘에 흩뿌리고 함석집 창문에는 남포불빛이 희미한데 은색 달빛에 꽃 그림자 살랑이던 고향집 앞뜰이 주름진 눈동자에 어른댄다. 송홧가루 노란연막처럼 피어오르고 조팝나무 꽃 흐드러질 때면 밀물처럼 번져가는 찔레꽃 향기에 벌 나비들 취해 길을 잃었다. 꽃 따지, 냉이 꽃, 민들레, 꽃마리, 둥굴레, 은방울 꽃 지천으로 피어나고 슬픈 운율의 멧비둘기 뒷산에서 울고 직박구리는 매화꽃잎을 쪼고 산 까치 정겹게 앞마당에 노닐 던 도연명의 이상향보다 더 솔직한 동네. 봄밤이면 자주 꿈길에 걷는 그 곳 2021.4.20

나의 창작시 2021.04.20

밤(夜)

밤(夜) 대지는 흑암 속에 갇히고 숲에는 빛이 어둠을 이기지 못한다. 조명(照明)이 도시를 점령했지만 달려드는 암연과 힘겹게 싸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어둠이 토혈처럼 번져나갈 때면 제풀에 꺾여 사그라지기를 기다릴 뿐이다. 태양이 자취를 감춘 밤에는 혼돈과 공허가 왕 노릇 하지만 그 밤이 꼭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내 몸을 치장했던 껍데기들을 훌훌 벗고 나만의 자유를 맘껏 누린다. 노출 되었던 자신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지친 영혼을 수면(睡眠)에 묻는다. 잡다한 생각들을 걸러내고 방전된 에너지를 가득밀어 넣는다. 어둠 속에 고단한 의식을 깊이 잠그면 지난 하루의 찌꺼기들을 필터링하고 아침과 함께 나는 다시 부활한다. 내일 살아나기 위해 어둠의 이불의 덮고 이 밤 또 침대위로 기어 올라간다. 2021.4.17

나의 창작시 2021.04.17

죽는 꽃

죽는 꽃 붉은 핏방울이 흘러내린다. 총탄에 맞은 병사들의 가슴처럼 벚나무와 참꽃나무에서 피가 쏟아진다. 완만한 언덕길로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사람들 질퍽대는 피를 밟으며 걷는다. 나는 밟아야 할지 돌아서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주춤거릴 때 뒷사람이 앞질러가는 발자국소리에 짧은 변별력은 붕괴되었다. 난 나무도 피를 흘린다는 걸 오늘 깨달았다. 꽃들이 피를 쏟으며 떠난 자리에 새로운 생명이 남아 박히고 자신들의 형상을 축소한 씨앗들 속에는 원조(元祖)의 숨결이 살아 숨 쉰다. 나는 냄새 없는 핏물이 두렵지 않다. 죽는 일이 소멸이 아니라 다시 사는 일인 것을 깨달아서다. 산이 이토록 푸른 이유는 일시에 피 흘리는 꽃들의 죽음덕분이다. 해마다 사월에는 피는 꽃만큼 피를 흘리며 죽는 꽃이 있어 벅차다. 202..

나의 창작시 2021.04.16

노스탤지어

노스탤지어 돌담 하나 없는 도시 공원에 복숭아꽃 붉어도 향수는 사라졌고 조팝나무 꽃 제아무리 흐드러져도 매연에 주눅 들어 고달프다. 밭둑 길 따라 어울러져 피던 철쭉과 봄밤을 하얗게 수놓던 배꽃과 찔레꽃 넝쿨 들불처럼 번져나갈 때면 봄의 훈기에 갇히던 그곳이 그립다. 콘크리트 돌담사이 사이에 위태롭게 피어난 영산홍 가엽고 중앙분리대 사이에서 아우성치는 페튜니아와 사피니아 가혹하다. 인조(人造)도시의 정연한 배열은 자연미를 잃어 삭막하고 보도블록 틈을 비집고 노랗게 웃는 찌든 잎의 민들레꽃을 나는 동정한다. 빌라 지붕에 줄지어 앉아 조는 참새들 진달래꽃 따먹던 산새와 비교되고 전봇대에 앉아 우는 산비둘기 저 산골 느릅나무가지로 보내고 싶다. 종달새 하늘높이 날아 노릴 때면 보리이삭 봄바람에 파도를 타고 진..

나의 창작시 2021.04.15

길을 걸으며

길을 걸으며 길이 있기에 그 길만 걸었다. 가야하는 길인 줄 알고 그냥 걸었다. 함께 걷던 사람들 모두 사라진 지금까지 나 홀로 외롭게 길을 걸었다. 내가 가는 길이 외길인줄 알고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이 길만 걸었다. 지루하고 따분해도 줄기차게 걸을 때 내 마음은 지폐채운 지갑처럼 뿌듯했다. 어느 날 내가 걷던 길옆에 샛길이 있어 호기심에 그 길에 들어섰더니 그윽하고 호젓함에 마음이 설랬다. 누군가 그 길을 걸었기에 길이 났고 그 길을 밟은 발자국은 뚜렷했다. 어떤 희열이 발바닥에 일어섰고 길 끝에서 만날 기대감에 감정의 파도가 연이어 일렁였다. 반면 어떤 두려움에 머리칼이 흔들고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원 인간처럼 내 심장소리가 정수리에 들렸다. 하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걷는다. 처음 걷던 그 길처럼 걸..

나의 창작시 2021.04.14

철쭉 꽃

철쭉 꽃 눈발 내리던 날을 제치고 꽃망울 맺힐 때 대견했는데 봄비에 활짝 핀 철쭉이 함초롬하다. 가랑비 솔솔 내릴 때 꽃잎마다 수줍어 고개 숙이고 살 오른 아기 웃음처럼 싱그럽다. 교정(校庭)뒤뜰에 일렬로 일어선 한 발 늦은 꽃망울에 걱정했는데 오늘 내린 비에 줄지어 피어나니 눈부시다. 나 오래전 자지러지게 터지던 진분홍 철쭉 꽃잎 소담스러워 한 아름 꺾어 안고 단숨에 달려가 안겨주고 싶던 그 사람은 지금 없지만 봄비 처연히 내리는 오후 메마른 가슴 촉촉이 적실 때 묻어 두었던 그리움이 되살아난다. 2021.4.12

나의 창작시 2021.04.12

등산(登山)길

등산(登山)길 한 노인이 이백십칠미터짜리 산을 오른다. 어제도 오르고 오늘 또 오른다. 장딴지가 땅기고 뻐근해도 중단할 수 없다. 심장에 불이 붙고 등줄기에 샘이 터져도 노인은 지팡이도 없이 혼자 걷는다. 누군가 밟았기에 길이 생겼고 발자국들이 쌓여 길표가 붙었다. 지난겨울 험한 산길에서 인생을 보았고 봄 비탈길 흙냄새에서 삶을 보았지만 꽃잎이 흩날릴 때는 많이 서글펐다. 지는 꽃잎이 흰 머리카락에 떨어질 때 꽃과 노인의 마음은 허옜다. 나뭇가지 붙잡은 손은 떨리고 가파른 길목에서 두 다리가 휘둘렸다. 이름 모를 새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노인이 오르는 길목을 지켜보면서 한참을 나뭇가지에 앉아 숨을 죽였다. 산길은 천천히 걷는 노인은 산보다 더 가파르고 미끄러운 그 산을 올라 척추는 쉬고 싶다고 소리를 ..

나의 창작시 2021.04.10

라일락 꽃

라일락 꽃 사월 녘 공원 뒷길에 자주 빛 라일락 흐무러지고 산들바람 가지 잎 흔들 때면 가녀린 허리의 네 모습이 떠오른다. 이제는 아련한 옛 이야기이지만 어느 봄날 라일락 핀 공원에 앉아 주제 없는 이야기를 속삭이며 설레던 마음을 꽃가지에 걸었었다. 맑은 햇살은 잔디밭에 쏟아지고 꽃잎은 분분히 흩날리고 고운 새들이 숲을 찾아 지저귈 때 네 맑은 눈동자는 또렷이 빛났다. 이제는 기억마저 어렴풋하여 한 장 구겨진 사진처럼 빛바랬지만 매해 이맘때면 하늘거리는 라일락꽃에서 절어 붙은 네 향기는 여전하다. 2021.4.9

나의 창작시 2021.04.09

봄 언덕에서

봄 언덕에서 아주 오랜 옛날이야기를 듣는 마음으로 나 오늘 봄 언덕을 거닌다. 앙증맞은 들꽃이 봄바람에 출렁이고 어머니 마음 닮은 설유화 눈부시며 어느 소녀의 양볼 닮은 복숭아 꽃 눈부신 정오의 햇살에 반짝인다. 봄바람은 꽃향기 가슴에 담고 풀잎 피는 산등성을 넘어 달아나고 하나도 거리낌 없는 나뭇잎들은 무늬벽지처럼 세상을 도배한다. 아주 오래전 아무도 없는 오지(奧地)에서 감당하기 힘들만큼 벅찼던 풍경을 우연히 넘던 봄 언덕에 마주했을 때 감추어 놓았던 세상을 발견한 감격이다. 제각각의 생명들은 벅차게 호흡하고 나름대로의 생김새는 조화롭게 뒤엉켰고 오로지 푸른빛으로 움직이는 삼림(森林)과 들판의 푸른 혁명은 어떤 신조를 따르는 종교의 축제 같다. 아직 지지 않은 벚꽃과 푸른 잎과 흰 꽃이 반반인 귀룽나..

나의 창작시 2021.04.07

봄비 궁구(窮究)

봄비 궁구(窮究) 흐무러진 벚꽃위로 비가 내릴 때 수만의 작은 나비 떼 날아 내린다. 흠뻑 젖은 날개가 힘에 겨워 아스팔트위로 팔딱이며 스러진다. 우줄우줄 피어난 개나리꽃 샛노란 꽃 이파리 해맑았는데 온 종일 쏟아진 장대비에 후줄근한 몰골이 못내 가엽다. 나뒹구는 목련 꽃잎 서글프고 살구꽃잎도 헌집처럼 무너졌다. 핏발 돋은 진달래꽃 주저앉고 늙은 홍매화 붉은 핏방울로 진다. 청초히 돋아난 옥잠화 새잎만 내려붓는 봄비를 반색하고 푸른 잎 새 맺혀있는 이슬방울이 은구슬만큼이나 영롱하다. 같은 날 내리는 사월 봄비는 이토록 서로가 딴판일까 서럽게 울며지는 꽃잎 애처롭고 가슴 도려낼 만큼 처연하나 연초록 빛 무성한 새싹들은 새 세상을 만난 듯이 출렁댄다. 피고 지고 가고 오는 교차로에 희비의 쌍곡선이 뚜렷하다...

나의 창작시 2021.04.0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