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죽는 꽃

신사/박인걸 2021. 4. 16. 15:25

죽는 꽃

 

붉은 핏방울이 흘러내린다.

총탄에 맞은 병사들의 가슴처럼

벚나무와 참꽃나무에서 피가 쏟아진다.

완만한 언덕길로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사람들 질퍽대는 피를 밟으며 걷는다.

나는 밟아야 할지 돌아서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주춤거릴 때

뒷사람이 앞질러가는 발자국소리에

짧은 변별력은 붕괴되었다.

난 나무도 피를 흘린다는 걸 오늘 깨달았다.

꽃들이 피를 쏟으며 떠난 자리에

새로운 생명이 남아 박히고

자신들의 형상을 축소한 씨앗들 속에는

원조(元祖)의 숨결이 살아 숨 쉰다.

나는 냄새 없는 핏물이 두렵지 않다.

죽는 일이 소멸이 아니라

다시 사는 일인 것을 깨달아서다.

산이 이토록 푸른 이유는

일시에 피 흘리는 꽃들의 죽음덕분이다.

해마다 사월에는 피는 꽃만큼

피를 흘리며 죽는 꽃이 있어 벅차다.

202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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