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걸 시인 작품상

일몰(日沒) 문예춘추 2020년 작품상 대상

신사/박인걸 2023. 4. 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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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日沒

저기서 저기까지 걸어가느라
태양은 온종일 얼마나 힘들었을까
혼자 걷는 길은 출구 없는 고독이다.
진종일 대지에 쏟아 부은 햇살은
코로나 긴급구제비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바다에 빠진 잉여햇살은 곯아떨어진다 해도
흘리고 간 햇살은 어떤 가슴을 어루만졌으리라.
일몰 이후의 거리는 그림자들이 도망치고
각을 세우고 일어섰던 세상은 어둠속으로 침몰한다.
그 시끄럽던 굉음도 일제히 무너져 버리고
그토록 견고하던 도시는 담덩어리에 불과하다.
다만 전광(電光) 아래 몰려든 불나비들만
희미한 불빛에 희망을 건다.
나에겐 일몰(日沒)이 설레임이다.
온 종일 따라 다니던 바람을 쫓아버렸고
귓전을 울리던 발자국 소리를 신발장 안에 가뒀다.
계단을 오르느라 갉힌 연골에 기름을 치고
전두엽에서 빠져나간 감정을 채워 넣는다.
쌈닭 눈으로 노려보던 팽팽한 긴장도
장진호 전투가 끝난 병사만큼 마음이 가볍다.
하루가 밤에 잠기는 동안 나는 다시 살아난다.
봄 비 내리는 오후보다 더 반갑다.
20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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