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걸 시인 작품상

한손에 십자가, 한손에 붓 (문예춘추에 수록)

신사/박인걸 2023. 4. 9. 21:48
  • 한손에 십자가, 한손에 붓

    <박인걸 시인 편>

    바쁜 성직(聖職) 생활에 시를 쓴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성직도 하나님의 축복이지만 시를 쓰고 발표한다는 것은 더욱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성도들에게 들려주는 설교의 말씀과 또 다른 계층의 독자들에게 시를 통한 하나님과의 대화는 어쩌면 일석이조의 수확을 가져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모임에서는 목사라는직책을 앞세우겠으나 시인들의 방에서는 시인이란 이름이 앞선다는 것을 우선 말하고 싶다.시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해지기 때문이다. 시는 아름다운 정서와 순결한 마음이 없는 사람은 굘코 손댈 수 없는 분야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박인걸 시인,그는 목사 시인이다. 목사로서 시를 쓰는 사람이 드문 한국적 풍토에서 그는 독특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일찍이 로마 시대에 요세프스란 장군이 로마군에게 항복을 하고 그들에게 아첨하기 위해 시도 쓰고 역사도 쓰고 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국민을 배신한 자의 심장에서 나온 그 시들이 과연 올바르겠는가.박인걸 목사는 목회를 준비하는 틈틈이 자신의 내부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들었고 그것이 하나님의 경외스런 말씀이고 그 말씀을 기록하라는 어떤 사명을 부여받았던 것 같다.그래서 그는 종교와 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대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시인으로서의 정서는 곧 삶의 순명적 완결로 이어졌으니 그가 쓴 시들은 성시(聖詩)가 되고 메시지가 되기도 한 것이다. 성직자로서의 양심과 욕심이 배제된 그의 시는 우리 시대의 영혼의 불길을 끌어올리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내가 늙으면

    고향이 아니라도 좋소.
    어느 시골 마을에 터를 잡고
    작은 초가집이라도 좋소.
    싸리나무 울타리에
    줄 콩을 심어 올리고
    작은 화단을 가꾸어
    배추국화에 채송화를 심고
    텃밭에 오이와 고추를 심어
    상추쌈에 오이냉국을 먹으며
    불어오는 소슬 바람에
    진향 쑥 냄새를 맡고 싶소.

    밤이면 별 가슴에 품고
    소쩍새 소리에 시를 읊으며
    반딧불이가 나는 냇가에
    낚싯대를 담그며
    흘러가는 세월을 낚고 싶소.

    염소를 키워 젖을 짜고
    벌을 키워 꿀을 따며
    마당가에 삽살개 한 마리
    뒤뜰에 암탉 두어 마리 길러
    아침 마다 생 계란을 깨고
    겨울이면 군불을 지펴
    따뜻한 아랫목에 몸을 지지며
    깨엿이나 먹으며
    읽고 싶은 책이나 싫 컷 읽으며
    그렇게 살고 싶소.

    이웃 마을의 개 짖는 소리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 부는 소리
    처마 끝에 낙숫물 소리에
    목침 베고 코를 굴며
    깊은 꿈길로 떠나고 싶소.


    이 시를 읽으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가 쓴 "윌든"이란 작품이 생각이 나는 것은 웬일일까.소로교수는 말년에 숲으로 들어가 오두막집을 짓고 자연과 더불어서 살았다.자연의 변화를 보면서 하나님이 만드신 이 숲에서 생명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진정 가치 잇는 인생과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깊은 사색을 햇고 이 책이 윌든이다. 박 시인은 노후에 이런 삶을 원하고 있다.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기도 하다.소로 교수는 2년 2개월동안 있으면서 자연의 신비와 자신을 자연속에 동화시키는 삶의 엄숙함을 체험했던 것이다.
    시인 박인걸은 바로 이런 삶의 아름다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진정 원하는 삶이라고 여기고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를 찬양하는 많은 시를 짓고 그 시대로의 삶을 살고 싶은 것이리라.생명을 창조하고 관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시로 될때 그는 큰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란 당신이 만든 세상에서 열심히 행복하게 살고 오라는 메시지인 것이지 무슨 사명과 어느 단체에 속해서 요란한 소리를 내라고 한 것은 아니란 것, 그래서 노후에 더 많은 시를 쓰고 싶은 것이다.

    *존재적 의미

    태백 뫼 자락에서
    첫 울음 터트린 나는 누구일까
    솔밭 사이로 부는 바람소리
    굴참나무 숲의 산새소리
    산골짜기 맑은 물소리
    아니 상처 입고 우는
    숫 노루 울음소리였다.
    거친 들 바위산을
    오랜 세월 그 누구를 찾아
    헤매고 헤매다
    여기까지 흘러온 나그네
    이마 위로 배꽃이 피고
    두 창문은 낡고
    돋보기 위로 안개가 서린다.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빛바랜 오동잎이러니
    아니 바람에 밀려 떠가는
    한 점 구름이려니

    탄생이란 섭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아브라함과 다윗까지 열네대,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때까지 열네대라는 그 족보가 있듯이 우리들에게도 생명의 사슬이라 일컫는 족보가 있다. 내 부모와 그 부모의 부모와 그 외가와 박씨성, 김씨성 이씨성등 온갖성들을 가진 선조들 가운데 한명이라도 궐위가 됐다면 과연 오늘의 우리가 나왔겠는가, 이것은 한치의 오차도 없는 생명의 사슬로 연결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오묘하신 계산과 섭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거친 들 바위산을
    오랜 세월 그 누구를 찾아
    헤매고 헤매다
    여기까지 흘러온 나그네
    이마 위로 배꽃이 피고
    두 창문은 낡고
    돋보기 위로 안개가 서린다.

    모세가 광야를 헤매다가 마침내 여호와의 소리를 듣고 찾은 시나이 산의 그 정적과 같은 엄숙한 기운이 뭉쳐져서 오늘의 박인걸 시인을 만들어 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시이다. 장소와 시간은 비록 다르지만 그 목적한 뜻은 합치가 되기에 여기에 엄숙하고 정결한 운명적 섭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박인걸시인은 이런 문제를 시로서 비유를 한 것같다. 종교외인이 읽어도 그런 느김이 드는데 성도가 읽으면 금방이라도 알아차릴 수 있는 세속적 공간을 배경으로 한 성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 人生 이야기

    하루는 긴데
    인생은 너무나 짧아
    네 살적 기억은
    눈앞에서 어른대고
    여덟 살 적 추억은
    映畵 그림처럼 생생한데
    해 넘어갈 시간이
    한 뼘 밖에 없네.

    인생은 화살
    榮華는 폈다지는 꽃
    덧없음은
    아침 雲霧라 할까
    어느 날 자취도 없이
    기억도 없이 사라질
    배 지나간 자리 같은 것

    구약의 전도서를 방불케 하는 시와 흡사한 이 시는 인생의무상함속에서 찾아야할 가치가 어디있는가를 묵시적으로 암시한 시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사람이 해 아래에서 스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도다.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곳으로 흐르던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니라.>

    < 전도서 제 1장에서부터...>

    박인걸 시인의 시는 인생이 허망하고 아주 짧다는 것으로 끝나는 시가 아니라 그 인생에서 진정 가치 있는 삶의 모습을 그려본 것이리라. 삶의 가치란 그가 평생을 가치의 척도로 삼은 종교에서 찾아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존재의 가치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미물과 같은 인간에게 과연 영원의 존재란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은유적으로 그려내고 잇는 목사다운 시가 아닐 수 없다.


    *그분이 오시고 있다. (새해)

    그분이 오시고 있다.
    깊은 웅덩이를 돋우고
    높은 언덕을 깎아내려
    평탄한 길을 만들자

    끊어진 길을 다시 잇고
    부러진 다리를 다시 놓자
    튀어나온 모퉁이를 다듬어
    우리 앞에 길을 곧게 하자

    찢어진 가슴을 꿰매고
    갈라진 마음을 합하자
    마음의 상처에 고약을 바르고
    엉클어진 사이를 풀자

    알면서 혹 모르면서
    기분 나쁘고 속상해서
    미워하며 헐뜯던 것도
    이제는 멀리 멀리 던져 버리자

    그분이 오시고 있다.
    눈앞에 와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으란다.
    낡은 부대는 찢으란다.
    우리 모두 새 마음으로
    그분을 반갑게 맞이하자꾸나.

    그분이란 굳이 설명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스님이 이야기하는 그분은 부처이고 목사이지만 시인인 그가 이야기하는 그분은 여호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새해를 맞이해서 그분이 오시는데 그분의 말씀인즉 새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한다고 하셨다. 그것은 헌부댈\에 술을 담으면 자칫 찢어져 아까운 술이 흘러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그분이 이야기하는 술은 새로운 사상을 의미한다.


    *화롯가에서 듣던 이야기

    방 한 가운데
    휘발유통을 잘라 만든 화로
    참나무 숯이 이글거리고
    둘러앉은 얼굴들이
    불빛처럼 뜨겁게 익어가도
    어머니의 살아온 이야기는
    한 겨울 만큼 추웠다.

    시어머니가 미워서
    남편이 야속해서
    시집살이가 너무 서러워
    울먹이며 털어 놓을 때면
    눈 가에 맺힌 어머니 눈물에
    고추 가루가 섞여있었다.
    어머니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도 눈이 매워왔다.


    옛적에 인고의 세월을 견디시고 자식들을 눈물로 키우던 어머니의 말씀이 웬일인지 지금도 눈시울을 적시는 것은 아직도 철이 덜 나서일까.박시인의 인간적 모습이 잘 투영이 되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선과 악

    한 사람 안에
    두 세계가 공존한다.

    사랑의 깃발을 세운
    선한 나라와
    미움의 깃발을 든
    악의 나라이다.

    치열한 영역다툼에서
    이기고 지는 상황이
    얼굴로 중계된다.

    선이 이기면 환하고
    악이 이기면 어둡다.

    시인이 생각하는 사회는 악을 이기고 선이 승리하는 것이다.그것은 목사인 박시인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그러나 외부적으로도 선과 악이 공존해왔고 선에 속한 사람들과 악에 속한 사람들과의 끝없는 투쟁의 역사를 마들어왔다. 악이 승리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다. 히틀러, 무솔리니, 김 정일, 스탈린 등등 하나님의 뜻을 거슬리는 독재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처리가 될 것이라 믿는 시인, 많은 기도가 필요할 것이 아닌가. 그 기도는 시가 되고 메시지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각인을 할 것이다.




    1954년생 

    백석 대학교 신학사
    백석대학교 기독신학대학원 목회학석사
  • 백석대학교 목회대학원 신학석사
  • 백석대학교 기독교문전무대학원 신학박사
    한남대학교 지역개발 대학원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 백석대학교 신학대학 출강
  •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출강
  • 경인백석신학교 교수
  • 부천노회 노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시인
  •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시인
  • 백석대학교 자랑스런동문상수상
  • 오정경찰서 경목회원회 위원장
    수주중앙교회 목사(은퇴)
  • 마이키즈월들(유엔 NDO 단체) 이사
  • 은혜교회 영성아카데미 원장
  • 은혜교회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