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공허함에 대하여

신사/박인걸 2020. 11. 23.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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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허함에 대하여
  •  
  • 길가에 누웠던 은행잎도
  •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 느티나무 고운 잎사귀들도
  • 오솔길 구석에 처박혔다.
  • 그 새파랗던 시절의 기운은 어디가고
  • 종말은 하나같이 비참하다.
  • 바람이 산기슭을 쓸고 지나갈 때
  • 함부로 불려다니는 가랑잎들과
  • 예절 없이 쏟아진 밤비에
  • 납작 엎드린 단풍잎의 눈물을 본다.
  • 핏빛으로 변한 기도의 흔적들이
  • 쌓인 낙엽에 남아 있는데
  • 그 아름다움으로 물들였던 함성이
  • 숲과 숲 사이에서 들려오는데
  • 며칠사이에 허물어진 공력(功力)이
  • 폐막된 무대보다 더 쓸쓸하다.
  • 저 창백함을 바라보라.
  • 저 뭉그러져버린 모양을 보라.
  • 고뇌에 가득 찬 면상들과
  • 물거품이 돼 버린 발자국에 눈물이 고였다.
  • 마지막 정점은 이토록 비참하고
  • 종말은 결국 한 줌의 흙이다.
  • 출생은 죽음을 위한 마라톤이며
  • 생존을 위한 몸부림도
  • 거미줄에 걸린 한 마리 매미다.
  • 세상에 너무 미련을 두지마라.
  • 삶을 지나치게 찬미하지마라.
  • 코로나에 목숨을 잃은 칠순 노인과
  • 된 서리에 까맣게 죽은 꽃이 뭐가 다른가.
  • 생명줄은 어느 날 끊어진다.
  • 살아있는 자들은 공허함을 잊지 말아라.
  •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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