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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같은 가을
여보!
또 다시 붉은 낙엽을 흩뿌리며
그 해 같은 가을이 노량진 언덕에 내렸소.
잔인했던 겨울을 가까스로 보내고
새파란 이파리 피우려 몸부림 칠 때
봄 서리에 순이 잘려 신음하면서도
가까스로 피운 꽃을 여름새들이 몽땅 잘라먹었소.
그 해 가을 사육신 무덤 앞에서
나는 흐르는 강 건너편을 보며 분노했소.
몇 해를 발버둥 쳐도 건널 수 없는
내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며
어지럽게 얽힌 시계부속품처럼
공허한 공회전에 세월을 잃었기 때문이었소.
시멘트포장 틈을 비집고 피운 민들레꽃이
수줍게 내 눈빛을 받아줄 때
어릴 때 심장에 감춰놓은 잠재력이
트레비 분수처럼 튀어 올랐소.
쭈그러들었던 가슴이 대문처럼 열리고
접혔던 의지는 경첩처럼 펴지며
멀리 도망쳤던 굳센 기운에
날선 칼날도 전혀 두렵지 않았소.
플라타너스 샛노란 단풍잎이
보도블록 붉은 길에 고운 무늬를 새길 때
때마침 내리던 가을비 맞으며
빠른 걸음으로 가로수를 제쳤소.
나를 반겨줄 사람 없던 그 때 그 거리에서
오늘 나는 누군가를 반겨 주려하오.
20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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