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나무에 대한 단상

신사/박인걸 2020. 11. 24.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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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에 대한 단상
  •  
  • 시작과 함께 탈출할 수 없는
  • 족 쇠에 묶인 노예가 되어
  • 오로지 위로 뻗어야만 살아남는
  • 가혹한 숙명의 나무라는 이름이여!
  • 여러 해를 그 자리에 서서
  • 잎을 피우고 지우고 또 피우지만
  • 나이테가 늘어갈수록
  • 삶의 무게에 점점 억눌리고
  • 불어오는 바람을 막을 길 없어
  • 때로는 몸 일부를 내주어야 했다.
  •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며
  •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모른다.
  • 숨 쉬는 유기체의 생존본능일 뿐
  • 의미나 이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 어느 날 전기톱에 쓰러진대 해도
  • 비명 없이 사라지는 파리 목숨이다.
  • 목재가 되거나 관상목이 되리라는
  • 꿈과 비전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 아름드리 거목은 운이 좋았을 뿐이고
  • 곧게 뻗은 수직 목은 품종의 차이일 뿐이다.
  • 인간과 나무는 이성과 본능의 차이며
  • 진위와 선악의 존재유무일 뿐이다.
  • 산다는 것은 거기나 여기나 같다.
  • 나는 솔직히 이성 없는 나무가 더 부럽다.
  • 한 겨울에 떨더라도
  • 도끼날에 베여 쓰러지더라도
  • 고통 없이 살다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고민 없이
  • 홀가분하게 떠나는 나무가 되고 싶다.
  • 202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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