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그는

신사/박인걸 2020. 9. 20.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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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는 스무 번 이사를 했다.

시골에서 태어나 풀밭이 마당이었고

나무와 풀의 이름을 많이 안다.

고기처럼 헤엄을 칠 줄 알고

청설모처럼 나무를 잘 기어오른다.

새와 나비와 꽃을 좋아해

언제나 숲을 즐겨 찾아 다녔고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색을 즐겼다.

 

그는 큰 꿈을 꾸었다.

밟고 다니던 흙길을 버리고

아스팔트길을 찾아 도회지로 갔다.

몸에서 흙냄새 풍기는 그를

도시는 강하게 밀어냈다.

하지만 그는 밀려나지 않았다.

지금은 도시에 자기만의 성을 쌓았다.

 

그도 이제는 두꺼운 안경을 썼다.

관절이 아파 계단이 두렵다.

연륜이 이마에 첩첩이 쌓이고

총명도 사라져 집 비밀번호도 가물거린다.

가끔 먼 하늘을 바라보며

성구(聖句)를 몇 구절씩 외운다.

그의 발아래 도시 비둘기들이 모여든다.

하얀 비둘기들이 그의 동무들이다.

20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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