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폭우(暴雨)

신사/박인걸 2020. 8. 10.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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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暴雨)

 

지겨우리만큼 비가 내린다.

산사태가 비탈진 밭을 덮칠 때

두려워 떨던 어릴 적 기억에 소름이 돋는다.

세찬 바람에 비가 섞여 내릴 때면

나무가 아닌 산이 흔들렸다.

병들지 않은 나뭇잎들이 맥없이 떨어지고

지축을 흔드는 천둥소리에 맞춰

눈 깜짝할 사이에 벼락이 나무에 쏟아졌다.

비명을 지르며 부러지던 노송 앞에서

나는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강물이 교량을 집어 삼키고

소들이 지붕위에서 방황하고 있다.

경찰정이 전복하여 가족들이 아우성이다.

나는 비의 무서움을 안다.

비는 눈물도 피도 인정도 사정도 없다.

세월이 흘러도 비는 변하지 않았다.

비는 그냥 물일뿐이다.

비를 무서워하지 않는 인간이 바보이다.

폭우가 내리는 날이면 긴장하고

퍼붓기 시작하면 나는 대비한다.

비가 때로는 낭만과 서정을 자아내지만

장마철에는 무서운 괴뢰군이다.

지금도 전쟁은 진행 중이다.

밖에는 총알처럼 비가 쏟아진다.

쫄딱 맞고 서 있는 나무들이 불쌍하다.

어디선가 폭우를 맞으며 걸어갈

어린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

20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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