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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놀로고
그날 수목원 나무 벤치에서
우연히 나는 그의 독백을 엿들었다.
안경 속의 흐린 눈은 시름에 젖었고
온갖 번뇌가 그의 표정을 붙잡았다.
태양은 계수나무 끝에서 놀고
새들은 갈참나무 가지에서 지줄 대고
산철쭉 꽃이 분홍빛 웃음을 토해도
그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나의 행복은 냇물처럼 흘러갔다.
아름다운 꿈은 꽃잎 되어 흩날렸다.
할당 된 시간들을 누이처럼 믿었더니
놀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숨기지 않은 보물찾기에 골몰하다
빈 깡통 더미에 초라하게 파묻혔고
사라질 것들만 골라서 흠모(欽慕)하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목말라 헤매며
이유 없는 사람들만 미워했다.
홀연히 태고 적 원시림에 드니
만병초 꽃잎은 아픈 기억들 지우고
은은한 보리수 향에 허무함을 잠시 묻는다.
바다 빛 구상나무 가지 내손 잡아주고
최고령 울릉 향나무 향이 가슴을 닦는다.'
복자기 나무 우람한 그늘이 그를 덮을 때
고단하던 표정이 은방울꽃처럼 피었다.
그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다.
20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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