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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무 이야기

어떤 나무 이야기 등이 굽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곧 쓰러질 것 같은 노목이 불쌍타 딱따구리에 쪼여 숭숭 뚫린 구멍위로 통 바람이 불고 낡은 이끼 덮인 밑동에는 검은 개미떼가 모여든다. 어쩌다 薄土에 자리를 잡아 賤身으로 허우적거리며 아름드리나무를 부러워 할 뿐 언제나 자신을 낮춰야 했다. 부딪치며 찢긴 상처들은 제대로 아물지 못해 아프고 자유분방한 자태에서 거칠게 살아 온 이력이 보인다. 차라리 이른 서리가 오던 날 연한 순이 요절했더라면 어느 나무꾼의 낫에 잘려 아궁이에 지폈더라면 피비린 내음 같은 아픔이 없었을 텐데 나무위로 지나가는 계절풍이 숲을 세차게 흔든다. 노목은 비틀거리며 두려운 비명을 지른다. 아카시아 꽃이 만발하였건만 노목은 주저앉을 시간만 기다린다. 2015.5.23.

카테고리 없음 2015.07.28

유월

유월 태양은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고 구름도 뜨거워 사라졌다. 달아오른 대지의 열기는 아라비아 사막이 된다. 풀잎마다 생명의 에너지를 잔디밭 분수처럼 뿜어내고 치밀어 올린 진액으로 핏빛 꽃들을 피워낸다. 숲은 검푸른 빛을 드리우고 새들은 둥지를 박차고 날며 들판을 지나는 바람도 사우나 온탕만큼 뜨겁다. 유월은 온통 짙푸르며 푸른 제복의 군대들 같다. 연병장에 모여선 젊은이들의 힘찬 함성 소리만큼 싱싱하다. 2015.6.23.

카테고리 없음 2015.07.28

능소화 기다림

능소화 기다림 하늘에서 날아 내려 온 어느 천사 날개의 刺繡처럼 연자줏빛 찬란함으로 마음을 흔드는 능소화여! 전봇대에 기대섰다가 낡은 집 토담에 걸터앉았다가 낮은 슬래브 집 옥상에 서서 목을 빼들고 누구를 기다리나 바람 한 점 없는 여름 날 입술을 자근이 깨물며 저녁 해 그림자를 밟으며 가슴만 붉게 타들어 가누나. 모퉁이를 돌아오실까 발자국 소리라도 들릴까 등 뒤로 와서 놀래 주시려나. 오늘도 하루해가 저무는데. 2015.7.3.

카테고리 없음 2015.07.28

질레나무

찔레나무 버려진 땅에서 아무렇게나 자라 자유분방하게 뻗는 가지에 초라하지 않은 꽃잎이 수줍게 피어나니 귀엽다. 가시를 곤두세우고 까칠한 모습으로 노려보며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뻗은 팔로 손사래를 젖는다. 환영받지 못할 존재임을 스스로 잘 알기에 마음을 주었다가 상처를 입느니 처음부터 다가오지 말라한다. 눈길을 끌지 못할 외모지만 자신의 영역을 넓히며 긴긴 가뭄에도 견뎌내며 억척같이 살아가니 대견하다. 2015.7.9

카테고리 없음 2015.07.28

질그릇

질그릇 어느 낡은 박물관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질그릇들이 옛 주인을 못 잊어 하며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어느 도공의 옹기가마의 뜨거운 불속에서 연단되어 작품이라며 인정받아 어느 집 밥상에서 사랑받았으나 도자기에 밀려 소박을 맞고 가슴 깊이 상처를 남긴 채 지금은 쓸쓸히 뒹굴고 있는가. 더러는 이가 빠지고 잔금이 거미줄처럼 얽혀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은 색깔마저 바랜 질그릇이여 황실에서 쓰임 받던 청자 백자 청화산수화조문이 못돼도 순수와 투박함으로 농부의 가슴을 덥혀주며 서민의 사랑을 한 몸으로 받던 모나지 않은 질그릇에서 나는 농부였던 내 아버지를 본다. 2015.7.18

나의 창작시 2015.07.28

빗소리

빗소리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새벽잠에서 깨어났다. 박자를 맞추는 낙숫물소리와 리듬이 흐르는 빗소리에 잠자던 의식이 살며시 기지개를 편다. 나지막한 어머니 자장가가 어린 가슴을 어루만질 때면 무장을 해제 당한 채 나는 깊은 꿈속을 산책한다. 고단한 농부 아버지가 이런 날이면 대청마루에 누워 기차화통 삶아먹던 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가슴을 울린다. 건넛집에서 울려오는 다듬이소리 부엌에서 빈대떡 굽는 소리 양철지붕 뒤집던 소낙비소리가 조용한 마음을 마구 흔든다. 토란잎에 구르던 빗방울만큼 맑은 눈동자의 소녀와 비닐우산을 함께 쓰고 걷던 시골길도 눈에 보인다. 혼곤한 도시 생활에 찌든 여유 잃은 나그네 가슴에 겹겹이 쌓인 낡은 먼지들을 말끔히 닦아내고 있다. 비야 하루 종일 내려다오. 2015.7.25

카테고리 없음 2015.07.28

희망

희망 태풍이 지나간 자리 중상을 입은 아카시아 나무가 쥐어뜯긴 나뭇잎들과 끝내 버티지 못한 느티나무를 보며 긴 한숨을 쉬고 있다. 피어나던 꽃들은 고개를 숙였고 연한 순들은 바들바들 떤다. 산사태가 훑고 지나간 자리는 전쟁의 상처보다 더 크고 벼락 맞은 나무는 싸매는 주는 이도 없다. 희망은 바다 속에 가라안고 꿈은 진흙탕에 묻혔다. 하지만 참화를 맞은 숲은 정신을 차리고 넘어진 자리에서 스스로 일어선다. 야생화는 더 진하게 피어나고 목이 꺾인 잡초에서 새순이 돋아난다. 헝클어진 숲은 제자리를 찾고 슬픔에 잠긴 새들이 노래를 부른다. 드넓은 숲은 하나가 되어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말없이 일한다. 하늘이 열려있어서다. 구름한 점 없이 활짝 열려있어서다. 뜨거운 여름 태양빛이 이글거리며 상처 입은 숲에 희망..

나의 창작시 2015.07.28

내 고향

내 고향 솔 잎 향이 숲에서 날아들고 갈잎 헹군 바람이 언덕을 내려오면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던 때 묻지 않은 고향에 가고 싶다. 산에는 산꽃이 들에는 들꽃이 사시사철 줄지어 피어나는 무릉도원보다 더 아름다운 그리운 고향에 가고 싶다. 종달새는 하늘을 날고 염소 떼가 풀을 뜯고 맹꽁이가 밤마다 노래하던 내 고향 보다 더 좋은 곳 있을까. 냇물은 온 종일 지줄 대고 구름도 힘들면 쉬어가고 사철 꽃비가 곱게 내리던 어머니 품 같은 내 고향이여 2010,10,3

카테고리 없음 2010.10.22

삶 멀쩡한 표정의 사람들도 만나보면 명치에 커다란 돌덩이를 매달고 살더라. 짓누르는 삶의 무게에 신음하며 병들어 가고 사랑을 받고 싶어 괴로워하고 사랑을 잃을까 몸부림치고 재물이 많아 잃을까 두렵고 너무 없어 한숨짓더라. 오만잡상(五萬雜想)으로 불면증에 잠 못 이루고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울며 화려한 차림이지만 속이 문드러진 사람도 있더라. 萬人이 부러워해도 실상은 아픈 사연을 안고 남 몰래 흘린 눈물이 강을 이루는 이도 있더라. 산다는 것은 빗줄기에 젖었다 바람에 흔들리다 캄캄 밤길을 홀로 걷다 어느 날 갑자기 안개처럼 사라지는 일이더라. 2010,10,6

카테고리 없음 2010.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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