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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순 속에 피는 믿음
- 나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가득 차 있다.
-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하게 살려는 사람은 고난에 빠지고
- 오히려 악을 행하는 자가 형통하고 존경까지 받기도 한다.
- 그 모순을 시편 기자들도 똑같이 고민했다.
-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 대놓고 물었다.
- “어찌하여 악인이 형통합니까?”
- 나 또한 같은 질문을 품고 있다.
- 그 질문은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 기도 중에 눈물로, 현실 속에 절망으로 녹아 있는
- 삶의 무게에서 나온 것이다.
- 성경은 그런 나에게 믿음을 말한다.
- 하지만 그 믿음이 언제나 위로가 되는 건 아니다.
- 때로는 더욱 큰 질문으로 돌아온다.
- 성경도 사람이 썼다.
- 물론 그 위에 하나님의 영감이 있다고 믿는다.
- 그러나 축자영감설이든 유기영감설이든
- 그 모든 해석은 결국 공동체가 신앙 위에서 세운 고백일 뿐이다.
- 진짜 그 신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 우리 인간의 언어로는 끝내 다 설명할 수 없다.
- 나는 그런 점에서 믿음은 모순을 껴안는 용기라고 생각한다.
- 신앙은 명확한 체계가 아니라,
- 의심과 질문을 품고도 하나님께 시선을 두는 일이다.
- 어느 날은 하나님이 너무 멀게 느껴지고
- 말씀이 그저 고대인의 문서처럼 느껴지고
- 기도는 공허하게 흩어질 때도 있다.
- 하지만 그런 날에도 나는
- 내 질문을 멈추지 않으며 믿음을 이어간다.
- 이스라엘의 광야 시절에는
-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이 즉각적이었다.
- 고라 일당의 심판, 미리암의 문둥병
- 애굽 군대의 수장 등은 두려움과 경외를 불러일으켰다.
- 그러나 오늘날에는
- 그런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 그래서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잊고
- 어떤 이들은 체념하고
- 또 어떤 이들은 묻는다.
- “정말 하나님은 계신가?”
- 나는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을 모른다.
- 그리고 그 모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 삶은 원래 모순 투성이다.
- 우리가 그걸 다 알 수 있다면
-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실 것이다.
- 나무가 산에서 바람에 쓰러지고
- 어떤 식물은 벌레에 먹히고
- 어떤 생명은 불에 타 사라진다.
- 인간도 그 일부일 뿐이다.
- 그런 불가항력 앞에서
- 운명론과 숙명론, 결정론이 생겨났을 것이다.
- 그러나 나는 여전히 믿는다.
- 완벽해서가 아니라
- 그 신비 속에도 하나님이 계시다고 고백하는 용기 때문에
- 믿음은 모든 것을 이해한 뒤에 하는 것이 아니라
- 이해하지 못해도 여전히 붙드는 것이다.
- 언젠가 우리가 사후에 천국에 이르렀을 때
- 하나님께서 지금의 질문들에
- 아주 작은 미소로 대답해주실지도 모른다.
- 그때까지는
- 묻고, 또 믿고
-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 202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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