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숨고싶다

신사/박인걸 2023. 3. 10. 03:02
  • 숨고싶다.
  •  
  • 온종일 태양은 구름에 갇혀
  • 발버둥 칠 뿐 빠져나오지 못하고
  • 그림자에 눌린 도시에는
  • 지나가는 차들도 짜증을 낸다.
  • 얼음꽃처럼 핀 매화꽃이
  • 사정없이 부는 봄바람에 꺾일 때
  • 피어나다지는 꽃을 보면
  • 어릴 적 홍역에 죽은 아이가 생각난다.
  • 오후 세 시가 넘었는데
  • 도시 비둘기는 아직도 배를 못 채우고
  • 꾸욱 거리며 두리번거린다.
  • 검은 비닐봉지가 바람에 펄럭이고
  • 너저분한 삶의 쪼가리들이
  • 어지럽게 도로 위에서 뒹군다.
  • 이런 날이면 여지없이
  • 나의 의식은 사막길을 걷는다.
  • 가고 가도 끝없는 나 홀로 고독했던
  •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에
  • 흙먼지 뒤집어쓰고 힘없이 걸을 때
  • 내 영혼의 깊은 탄식은 하늘로 솟아 올랐다.
  •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모래에 묻고
  • 썩은 동아줄도 사라진 벌판에서
  • 무너지는 흙 언덕을 밟고 또 밟던
  • 거기는 황량한 땅이었다.
  • 아무리 삭제 버튼을 눌러도
  • 영혼의 저장공간에 눌어붙은 기억이
  • 오늘 일기(日氣)에 또 소환된다.
  • 이런 날은 어디론가 숨고 싶다.
  • 202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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