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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의 길
흔들지 않아도 나뭇잎이 떨어진다.
소멸의 길을 찾아가는 존재는 슬프다.
각자 살아 온 뒤안길에는
털어 놓을 수 없는 무수한 사연들이
쌓인 낙엽만큼 많지만
모든 것을 고백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가슴은 누렇게 병이 들었고
어떤 명치끝은 빨갛게 타들어갔다.
나는 그 사연들을 밟고 지나간다.
아픔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사정(事情)을 하소연고 싶어 하지만
나는 귀를 기울일 겨를이 없다.
내 속에 긁힌 상처도 많아
들어 줄 여유가 없다.
차라리 나도 낙엽이 되어
비탈진 어느 산기슭에 조용히 눕고 싶다.
바람이 술술 새는 숲 사이로
지나온 벽경(僻境)을 훔쳐보고 싶다.
고단하게 살아 온 이야기들을 엮어
예순 아홉 자 높은 나뭇가지에 걸고 싶다.
마침 구름이 바람을 몰고 왔고
바람은 지고 싶어 하는 잎들을 잡아당긴다.
일시에 쏟아버린 나무들마다
자유의 몸이 되었다며 춤을 춘다.
나도 미명(未明)오기 전에
의지한 안장(鞍裝)을 걷어 보관소에 맡기고
아주 먼 길을 떠나고 싶다.
내 마음을 눈치 챈 잎들이 드러눕는다.
황금빛 길이 참 곱다.
20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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