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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山)에서
마이삭이 숲을 헤집고 다니며
벌레 먹은 나무를 사냥한다.
상처 있는 나무가 위험하다 했었는데
오늘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전기톱이 긋거나 도끼날이 닿지 않았는데
바람이 몇 번 흔들고 지나가자
힘없이 스러지는 모습이 가엽다.
연륜이 쌓인다는 것은
죽음의 계단을 높이는 일이다.
정점에 이르렀을 즈음
맨 밑에 고인 받침돌이 깨진다.
고목의 죽음에서 사람을 본다.
어느 날 홀연히 찾아 올 운명의 날이
가면을 쓰고 있어 안 보일 뿐이다.
벽에 걸린 초침은 지금도 돈다.
감긴 태엽이 풀리는 순간 유예가 없다.
죽음은 한 겨울보다 더 잔인하며
고약한 판사의 선고만큼 가혹하다.
새 봄이 와도 스러진 나무는
넘어진 채 흙이 될 뿐이다.
내가 오늘도 산을 찾는 이유는
벌레가 내 몸을 갉아먹지 않게 함이다.
202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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