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보리수 나무

신사/박인걸 2020. 5. 2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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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나무

 

헉헉대며 오르는 절골 언덕에는

보리수 몇 그루 마주보며 지껄인다.

갈참나무 숲 사이에 외로이 서서

히끄무레한 꽃잎 진한 향을 내뿜으며

가녀린 바람에 여린 팔을 흔든다.

태생적 잡목의 운명이지만

나름 스스로 갈고 다듬어 소탈한 모습으로

삼림의 구색을 맞추어 존재감을 드러낸다.

인동 초 몸을 꼬며 기어오르고

찔레꽃 어설프게 바람에 나부끼는데

보리수나무는 의젓이 서서 하늘만 본다.

거목(巨木)의 꿈을 일찍 접고

겸손하기로 다짐할 때 오히려 단단했다.

바람에 심하게 흔들릴 지라도

강한 의지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화려함이나 누구의 이목을 집중시킬

흠모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해도

고유한 자기 빛깔을 내며 사는 철학이 있다.

여기저기 키 작은 묘목이 쳐다보고

종목(種)木)은 꺾일 줄 모르는 의지가 있다.

더디지만 이 땅은 보리수의 영역이 되리라.

검은 등 뻐꾸기 숲에서 울고 있다.

홀딱벗고, 홀딱벗고, 딱히 다른 표현이 없다.

보리수나무도 우스운지 몸을 흔든다.

20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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