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작약 꽃

신사/박인걸 2020. 5. 22.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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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 꽃

 

겨우 며칠 화려했다.

쌈을 먹다 목구멍에 걸려

관자놀이에 드러난 핏대보다 더 붉던

작약 꽃이 저항도 없이 무너졌다.

이른 봄 언 땅을 뚫고 촛대처럼 솟구치며

꽃망울 발롱대며 햇볕과 장난할 때

양귀비보다 더 화려할 뒤태를 보았다.

초여름 햇살이 꽃잎에 섞여

백 번을 칠한 정물화보다 더 붉을 때

나는 네 곁에서 삶의 희망을 캤다.

너무 고와 벌 나비도 두려워 얼씬 않던

황실(皇室) 뒤뜰만 거니는 황녀 같은 자존심도

가랑비 두어 번 맞고 난 후

어미죽은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장롱 앞판의 무늬처럼 화려해도

열흘을 채우지 못하는 가련함 앞에

모란이 질 때처럼 두견은 울었다.

제아무리 무리지어 홍역처럼 물들어도

아침별처럼 일제히 사라진다.

꽃은 지고 푸른 잎사귀만 허무하게

푸른 하늘 아래서 쓸쓸하게 흔들린다.

가을 낙엽 지던 날과 같은 허무함이

빗물처럼 내 양미간으로 스며든다.

202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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