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춘궁기(春窮期)
보랏빛 꽃을 피우는 자주색감자가
비름나물과 키 경쟁을 하고 있을 때
배고픈 동심은 톱밥보다 더 억샌 옥수수밥을
눈물에 말아 억지로 삼킬 때면
마당가 미루나무 잎에 앉은 햇볕이
팔랑거리며 나를 달랬었다.
아버지의 힘은 과녁을 빗나갔고
어머니의 노력은 레일을 벗어난 기차였다.
자식들이 배를 곯아도
그건 부모의 탓이 아니었다.
오랑캐가 쳐들어온 어쩔 수 없는 전쟁이었다.
그 때 동심(動心)은 찔레꽃을 따 먹다가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 단물을 빨다가
이름 모를 풀잎을 뜯어먹는 염소새끼였다.
초점 잃은 눈에는 대낮에도 별이 보였고
산고랑에 흐르는 물소리를
배꼽에서 들으며 잠을 청하지만
하루도 여러 차례 적응장애에 시달렸다.
어머니 뜨거운 눈물이 내 양 볼을 적시면
불쌍한 내 새끼 소리가 자장가가 된다.
아카시아 꽃 피던 춘황 때 굶던 아이가
추억에서 튀어나오며 나에게 소리를 지른다.
나 지금 배가 터질 것 같아요.
2020.5.19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