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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언덕
4월 하순은 도시의 허파가
연녹색 피를 수혈 받으며 펌프질을 한다.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를 바람이
두렵던 기억을 뇌리에 대 못질 하며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은 채 행패를 부린다.
오늘도 버릇대로 그 언덕을 오를 때
머리를 풀어헤친 바람은
실성한 모습으로 내 얼굴에 모래를 뿌렸다.
나는 자의식이 형성되기 전에 백일해를 앓았다.
내 영혼이 강풍에 강 건너로 불려갈 순간
어떤 페니실린에 의해 기사회생했다.
영롱한 꿈이 뭉게구름을 탈 때
소름끼치는 강풍은 꿈을 빼앗아 시궁창에 던졌다.
백의 천사가 건네 준 스트렙토마이신이
엉덩이 근육을 깊이 뚫고 들어와 꿈을 건졌다.
폭풍이 불 때면 나는 손을 내밀었고
여지없이 달려온 강한 손이 붙잡았다.
바람이 아카시아나무 위를 달린다.
지금은 붉은 햇살을 언덕너머로 끌고 간다.
엊그제 막 피어난 연한 순이 상처를 입었다.
그래도 나는 하나도 두렵지 않다.
파랗게 돋는 풀잎이 울며 나를 바라본다.
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이정도의 바람을 맞아야 세상을 산다.
네댓 차례 강풍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꿋꿋이 서 있을 때 드디어 제 구실을 한다.
오늘 부는 바람은 하나도 춥지 않다.
202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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