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어머니 이야기

신사/박인걸 2020. 3. 2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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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이야기

 

가신 이에 대한 기억이 촛불처럼 흔들린다.

흘러가는 세월은 모정(母情)도 땅에 묻는다.

단풍잎이 첫눈에 꿈을 잃어버리던 날

꽃상여 속에 아픈 울음을 멀리 흘려보냈다.

햇빛이 자주 놀러 오는 언덕 빼기에

고운 이부자리 한 벌 깔아 드릴 때

산비둘기 몇 마리가 구슬픈 노래를 불렀다.

디디며 걸어간 땅이 하도 가파르고 사나워

차마 말끝을 잇기가 민망(憫惘)하다.

한숨에 취해 비탈길을 오르던 날

새까맣게 탄 가슴을 열어 보일 때

붉은 눈물이 뜨거운 폭포 되어 쏟아졌다.

질퍽한 흙탕물을 맨발로 밟고

헐벗은 온 몸이 가시에 할퀴어도

꾸러미로 매달린 자식을 털어내지 못해

응어리진 가슴을 세월로 삭였다.

불을 밟으며 걸어도 뜨겁지 않고

총알이 가슴을 뚫어도 피가 흐르지 않았다.

창자를 빼놓고 사는 모성(母性)은

사람이 아니라 차라리 목석(木石)이다.

지나간 동안이 참 길다.

어머니 사연은 강물에 실어 보낸다.

그 바닷가에 이르거든 파도로 철썩여주려무나.

202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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