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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恐怖)
태연한 척 지나가는 사내 모습을
영상의 주인공처럼 바라본다.
눈 내리는 들길에 홑적삼 입은 노인처럼
호졸근하고 궁상스런 그가
양 어깨에 힘을 주는 듯하지만
범과 맞선 하룻강아지였다.
깊이 스며드는 무증상의 비세포성 생물 앞에
훔치다 들킨 소년처럼 당황한다.
손에 든 가죽 방패는 이미 낡았고
스승이 손에 쥐어준 단검은 녹슬었다.
신병훈련소에서 익힌 총검술은
이미 폐기처분 된 구식이다.
머릿속에 겹겹이 쌓인 무수한 활자들도
개기 일식 흑암 사이로 빛나는 광환에
놀라서 어지러이 흩어져 숨는다.
이렇게까지는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어떤 재벌 이세보다 무서울 것 없었다.
허나 객쩍게 부리는 혈기였다.
나는 제발 문을 닫는다.
날이 어둡기도 전에 두려워 문을 잠근다.
여전히 심장은 두근거린다.
20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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