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폭염(暴炎)

신사/박인걸 2018. 8. 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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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暴炎)

 

내 생애에 한두 번 있을 법한 더위가

한반도를 찜질방에 가둔다.

아스팔트위에는 신기루가 왕래하고

도시 전체가 도가니다

가로수는 지쳐서 휘청거리고

왕래하던 도시는 한산(閑散)하다.

연일 갱신되는 수은주(水銀柱)

사람들은 소스라치며

작열(灼熱)하는 태양에 가슴을 끓인다.

이처럼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면

아버지 기억(記憶)에 먹먹하다.

삼복더위에도 밭고랑에 앉아

등줄기에 땀이 도랑처럼 흘러도

보랏빛 콩 꽃에 웃음을 주며

웃자란 바랭이를 뽑으시던 손길

무딘 호미로 굳은 땅을 파내

북을 돋우시던 울 아버지는 농부(農父)

깊은 주름에 흙먼지가 고이고

거칠어진 손마디는 갈퀴가 되었어도

딸린 식솔을 굶기지 않으려

개미처럼 부지런 했던 호주(戶主)

시원한 에어콘 앞에 앉아

오래된 서적을 뒤적이던 나는

차마 더 이상 앉아있지 못하고

폭염(暴炎)에 나를 자해(自害) 한다.

201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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