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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아내는 새벽 네 시면 일어나
배가 부른 종량제 보따리를 들고
예순 네 개의 계단을 내려와
죽은 생활용품 정류장에 내려놓으면
성광용역이라는 영구차가 비닐 관을 싣고 떠난다.
말끔해진 전봇대 주변을 살핀 아내는
어슴푸레한 길을 걸어 예배당으로 향한다.
아내의 가슴에는 조금 전에 버린 봉투보다
더 큰 소원 보따리가 있다.
예배가 끝난 후 어둑한 조명아래
영혼을 흔드는 차임벨 음악이 이어지고
보따리를 풀어 목차대로 간절하게 읊조린다.
아내는 항상 그 자리에 앉는다.
그렇게 한지 만천칠백일이 넘었다.
고개를 앞뒤로 젓거나 꼿꼿한 자세로 앉아
불쾌하지 않은 음성으로 매일 아뢴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그의 소원을 신기하게 이뤄졌다.
어떤 날은 어깨가 흔들릴 정도로 운다.
남편도 모를 서러움이 그의 명치를 짓눌러서다.
모두 자리를 떠나도 아내는 아직 그 자리에 있다.
귀에 익은 경음악이 공간을 채우고
새벽은 아직 가로등 아래서 맴돈다.
빨간 십자가 조명이 예수의 피만큼 붉고
우러나온 절실한 기도는 십자가를 붙든다.
내가 신이라도 그 모습에 녹아
빈 손으로 돌려보낼 수 없는 기도여!
십자가에 매달린 아들을 바라보며 울던
성모 마리아와 같은 애달픔이
내 아내의 기도소리에 묻어나고 있다.
아침이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선다.
201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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