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어떤 여자

신사/박인걸 2018. 7. 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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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자

 

문은 스스로 열리고

힐을 신은 여자가 걸어와 테이블에 앉는다.

말아 올린 머리와 고품위 화장은

있는 집 여자라는 분위기가 풍긴다.

약속시간보다 빨리 온 모양이다.

스마트폰을 꺼내어 시간을 확인한다.

네일아트로 다듬은 거칠지 않은 손이

물 컵의 손잡이를 들어 올려

연분홍 립스틱 칠한 입술에 살며시 댄다.

저 고운 손으로 상처 입은 사람의 마음을

몇 명이나 어루만져 보았을까

억울하거나 절박하여 우는 사람에게

손수건을 꺼내어 닦아 주었을까?

자르지 않은 손톱을 곤두세우고

옆 사람의 속을 박박 긁지는 않았을까?

내키는 대로 두리번거리지는 않아도

내려 깐 눈매가 결코 선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 눈빛에 약간의 건방짐과 업신여김이 보인다.

머릿속에는 크게 든 것 없이

지갑만 불룩한 경멸당할 여자일지 모른다.

실속 없이 허세를 부리며

가혹한 눈빛으로 남을 노려보지 않았을까?

상대방을 제압하여 만족감에 희열하는

어느 정신 병력의 사람처럼

저만의 세계에 빠져있을지 모른다.

밉지 않은 하지(下肢)를 들어 포갠다.

힐 뒤꿈치가 콧날만큼 뾰족하다.

컵에 담긴 물을 낚아채듯 들어올린다.

처음 마실 때와는 상이하다.

상당한 침묵이 흐르고

여전히 그의 테이블에는 컵이 하나다.

벨이 울리고 스마트폰을 들었다.

실망한 듯 그 여자는 벌떡 일어섰다.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음성은 천박했다.

나의 추리가 반쯤은 맞았다고 생각한다.

수준에 안 어울리는 핸드백을 들고

그는 자동문이 있는 곳으로 내뺀다.

일시에 공간에는 침묵이 흐른다.

20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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