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새 겨울 새 천 조각 하나 걸치지 못한 시뻘건 정강이에 긍휼 없는 강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어도 겨울새는 얼음 위를 걷는다. 눈물도 말라붙고 목소리마저 얼어붙어 하늘을 향해 흐느껴 울 기력마저 쇠하여 버린 새는 그래도 쓰러지지 않고 걷는다. 무지갯빛 하늘을 날며 짝짓던 설레는 꿈을 털 깃에 깊이 숨기고 잔혹한 시련을 견디며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2015.3.17. 나의 창작시 2015.07.28
지는 꽃 잎 지는 꽃잎 어제의 생명이 오늘은 무 생명으로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아무렇게나 나부낀다. 진실하던 그 빛깔도 벌 나비 모으던 향기도 고운 추억만 간직한 채 짧은 영화로 만족해야 한다. 스스로 무너지거나 바람에 잘리거나 흐르는 시간 앞에서 낙화해야 하는 운명이 불쌍타 아직 붙어 있는 꽃잎도 다가오는 밤이 두렵다. 살아 있는 것들은 하나같이 매일 떨며 살아간다. 2015.5.21. 카테고리 없음 2015.07.28
산비둘기 울음 산비둘기 먼동이 틀 무렵 산비둘기가 목 놓아 운다. 무엇이 저리도 슬퍼서 어둠 속에서 우는가. 아교풀 같은 응어리가 목구멍으로 넘어 올 것 같아 밤 새 잠 못 이루다 서러움이 북받쳤나보다 삶의 무게는 돌덩이 같고 출처모를 괴로움이 명치를 누를 때면 외로운 산비둘기는 가끔 운다. 새벽안개 자욱한 아주 오래된 벽돌집에서도 산비둘기 보다 더 서러운 새벽기도가 흐른다. 2015,4,25, 나의 창작시 2015.07.28
그리운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오월 산 라일락 꽃 향에서 어머니의 향취를 느끼며 흐르는 여울물소리에서 어머니의 기도소리가 들립니다. 산 목련 꽃잎 같은 어머니의 순결함이 팔랑 나비 입 맞추는 제비꽃 겸양함에 고여 있습니다. 가지 끝에 피어나는 연한 햇순 같은 어머니여 숲을 지나는 실바람소리에서 어머니의 자장가가 들립니다. 깊이 구멍 난 가슴의 상처에 진한 눈물이 가득 고였어도 별빛을 쓸어 담아 영롱한 진주를 만드시던 어머니 패랭이 꽃 한 아름 안고 초록 풀 덮인 어머니 무덤으로 내 마음은 달려가고 있습니다. 늦봄이면 더욱 그리운 어머니! 2015.5.9. 나의 창작시 2015.07.28
넝쿨 장미의 그리움 넝쿨 장미의 그리움 울타리 너머 그대를 생각하며 스치는 그림자라도 밟으려고 오늘도 조금씩 기어오른다. 한 뼘 두 뼘 오르다 보면 언젠가는 그대 앞에 설 수 있으리. 천둥 번개 이는 밤이면 고개를 파묻은 채 떨다가도 아침 햇살에 희망을 품고 다시 기어오르기를 쉬지 않았다. 곤두세운 가시가 가슴 깊이 생채기를 내도 그대에게로 향한 내 마음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진액을 토하는 기도를 밤낮으로 쏟아 부었고 핏빛보다 더 붉어진 홍안은 당신을 향한 나의 열정이리. 드디어 뒤뜰이 보이고 당신 그림자가 마당에 어린다. 한 평생 오느라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당신이 거기 서 있기에, 2015.5.17. 카테고리 없음 2015.07.28
어떤 나무 이야기 어떤 나무 이야기 등이 굽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곧 쓰러질 것 같은 노목이 불쌍타 딱따구리에 쪼여 숭숭 뚫린 구멍위로 통 바람이 불고 낡은 이끼 덮인 밑동에는 검은 개미떼가 모여든다. 어쩌다 薄土에 자리를 잡아 賤身으로 허우적거리며 아름드리나무를 부러워 할 뿐 언제나 자신을 낮춰야 했다. 부딪치며 찢긴 상처들은 제대로 아물지 못해 아프고 자유분방한 자태에서 거칠게 살아 온 이력이 보인다. 차라리 이른 서리가 오던 날 연한 순이 요절했더라면 어느 나무꾼의 낫에 잘려 아궁이에 지폈더라면 피비린 내음 같은 아픔이 없었을 텐데 나무위로 지나가는 계절풍이 숲을 세차게 흔든다. 노목은 비틀거리며 두려운 비명을 지른다. 아카시아 꽃이 만발하였건만 노목은 주저앉을 시간만 기다린다. 2015.5.23. 카테고리 없음 2015.07.28
유월 유월 태양은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고 구름도 뜨거워 사라졌다. 달아오른 대지의 열기는 아라비아 사막이 된다. 풀잎마다 생명의 에너지를 잔디밭 분수처럼 뿜어내고 치밀어 올린 진액으로 핏빛 꽃들을 피워낸다. 숲은 검푸른 빛을 드리우고 새들은 둥지를 박차고 날며 들판을 지나는 바람도 사우나 온탕만큼 뜨겁다. 유월은 온통 짙푸르며 푸른 제복의 군대들 같다. 연병장에 모여선 젊은이들의 힘찬 함성 소리만큼 싱싱하다. 2015.6.23. 카테고리 없음 2015.07.28
능소화 기다림 능소화 기다림 하늘에서 날아 내려 온 어느 천사 날개의 刺繡처럼 연자줏빛 찬란함으로 마음을 흔드는 능소화여! 전봇대에 기대섰다가 낡은 집 토담에 걸터앉았다가 낮은 슬래브 집 옥상에 서서 목을 빼들고 누구를 기다리나 바람 한 점 없는 여름 날 입술을 자근이 깨물며 저녁 해 그림자를 밟으며 가슴만 붉게 타들어 가누나. 모퉁이를 돌아오실까 발자국 소리라도 들릴까 등 뒤로 와서 놀래 주시려나. 오늘도 하루해가 저무는데. 2015.7.3. 카테고리 없음 2015.07.28
질레나무 찔레나무 버려진 땅에서 아무렇게나 자라 자유분방하게 뻗는 가지에 초라하지 않은 꽃잎이 수줍게 피어나니 귀엽다. 가시를 곤두세우고 까칠한 모습으로 노려보며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뻗은 팔로 손사래를 젖는다. 환영받지 못할 존재임을 스스로 잘 알기에 마음을 주었다가 상처를 입느니 처음부터 다가오지 말라한다. 눈길을 끌지 못할 외모지만 자신의 영역을 넓히며 긴긴 가뭄에도 견뎌내며 억척같이 살아가니 대견하다. 2015.7.9 카테고리 없음 2015.07.28
질그릇 질그릇 어느 낡은 박물관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질그릇들이 옛 주인을 못 잊어 하며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어느 도공의 옹기가마의 뜨거운 불속에서 연단되어 작품이라며 인정받아 어느 집 밥상에서 사랑받았으나 도자기에 밀려 소박을 맞고 가슴 깊이 상처를 남긴 채 지금은 쓸쓸히 뒹굴고 있는가. 더러는 이가 빠지고 잔금이 거미줄처럼 얽혀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은 색깔마저 바랜 질그릇이여 황실에서 쓰임 받던 청자 백자 청화산수화조문이 못돼도 순수와 투박함으로 농부의 가슴을 덥혀주며 서민의 사랑을 한 몸으로 받던 모나지 않은 질그릇에서 나는 농부였던 내 아버지를 본다. 2015.7.18 나의 창작시 2015.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