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봄의 힘

신사/박인걸 2021. 5. 17. 19:42

봄의 힘

 

즐비한 가로수들이

전기톱에 참수를 당한채로

검은 허공을 떠받치며

전봇대처럼 서 있다.

몹쓸 병에 걸렸거나

극악한 죄를 지은 일도 없는데

전깃줄 밑에 서 있다는 죄로

하나같이 목이 잘렸다.

햇볕은 나뭇잎 위에서 놀고

바람은 이팝 꽃잎을 쓰다듬을 때

서 있는 나무통은

모든 꿈을 접은 줄만 알았다.

봄비 온종일 쏟아지던 날

굵직한 새순들이 버섯처럼 돋아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있는 힘을 다해 순을 밀어 올리는

장엄하고 힘찬 함성이

들을 귀 있는 자에게만 들린다.

잔인하게 잘려버린 빈 장대 마디에

펄럭이는 생명을 촘촘히 매달아

원형을 재건하는 봄의 힘에 감탄한다.

나도 나무처럼 참수를 당하고 싶다.

202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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