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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걱정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좋은 시 모음 2023.02.24

가정

가 정 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 구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 삼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좋은 시 모음 2023.02.24

삶의 단상

삶의 단상 삶은 끊임없이 출렁이는 바다이며 그 위에 떠 있는 돗단배이다. 아득한 수평선 너머로 설레는 꿈을 싣고 쉬지 않고 노 저어 나간다. 때론 순풍에 여유로이 노닐고 캄캄한 밤하늘에 별을 헤며 잠든다. 풍우대작할 때면 하늘이 무너지고 천 길 파도에 삶의 뿌리가 흔들린다. 삶은 멈추지 않는 물결이며 절대 안전하지 않은 뱃길이다. 간혹 구름 위를 걷는 낭만에 젖어도 순간 슬픔에 휩싸여 눈을 감아야 한다. 감고(甘苦)의 희비(喜悲)가 상존 해도 그런 일상을 넉넉히 이겨내며 한점 흔들리지 않고 노 저어 나갈 때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피어난다. 삶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갈 뿐 절대로 뒤돌아설 수 없다. 항상 파도위에 출렁일 찌라도 안전한 항구를 향해 나갈 뿐이다. 2023.2.24

나의 창작시 2023.02.24

고향

고향 구름이 쉬어가던 길목에 드높은 산이 서 있고 어디론가 굽이쳐 흐는 냇물은 온종이 지절대며 흐른다. 산새 들새들은 노래하고 각양각색의 꽃들이 만발하는 솔 향기 진하게 풍겨오던 그곳에는 또 하나의 내가 살고 있다. 아주 오래된 기억이지만 가슴속에 샛별처럼 빛나고 문신보다 진하게 새겨진 추억은 불씨처럼 되살아난다. 밤이면 적막에 휩싸이고 낮이면 그림보다 정겨운 마을 동심의 마음에 장아찌처럼 절인 아랫목보다 더 따스한 동네 내가 살던 마을, 마음에 있는 집 꿈속에서 자주 찾아가는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여 죽어서도 흙이되고 싶은 땅이여 2023.2.23

나의 창작시 2023.02.23

그리움

그리움 네가 그날 멀리 떠난 후 너의 뒷모습이 내 눈 속에 남아있고 저녁 노을 비처럼 쏟아질 때면 사무친 그리움에 나는 방황한다. 밤 하늘 별이 빛날때면 너의 얼굴은 가슴에서 반짝이고 바람이 귓가를 스칠 때면 너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너에 대한 기억의 편린들이 비늘조각처럼 일어설 때면 그리움은 진한 눈물이 되어 가슴언저리로 타고 내린다. 그리움은 사랑의 상처일까. 그리움은 사랑의 그림자일까. 만약 너에대한 그리움마져 없다면 나는 한 마리 짐승이리라. 2023.2.22

나의 창작시 2023.02.22

고독

고독 나는 어느 유성에서 흘러나와 떠돌고 돌며 이곳까지 왔을까. 시작도 출처도 알수 없는 미완의 존재로 아직까지 헤매며 다닐까. 비슷비슷하지만 서로가 자신을 숨긴채 자신도 모르는 곳을 향해 걸어가는 측은한 행렬과 함께 서있다. 막연한 기대와 혹은 설렘으로 내 고독을 감싸줄 누구를 기다렸지만 그것은 하나의 망상일 뿐 현실은 언제나 철저하게 홀로였다. 자연은 아무 소리없이 흘러가고 사람은 태연한척 표정을 감추지만 마음을 헤집고 들여다보면 소리 없는 아우성이 뼈에 사무치더라. 노르웨이의 어느 계곡에서 외로움을 극복하며 일어서리라 다짐했다. 바위틈 한 송이 에델바이스에서 고독이 참 아름다움을 보아서다. 2023.2.22

나의 창작시 2023.02.22

그 여자네 집

그 여자네 집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 속에 깜박깜박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 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 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초가집 어쩌다가 ..

좋은 시 모음 2023.02.20

그해 여름 밤

그해 여름밤 박인걸 쏟아지는 별빛을 물결에 싣고 밤새도록 지줄대며 흐른 냇물아 반디불이 깜박이던 한여름밤 불협화음에도 정겹던 풀벌레 노래 소나무숲 방금 지나온 바람 가슴까지 닦아내는 고마운 길손 왕거미 집 짓던 처마 밑에서 꿈길을 거닐던 하얀 바둑이 희미한 초승달 별 숲에 갇혀 밤새 노 젓다 지친 나그네 산새도 깊이 잠든 검은 숲 위로 더러는 길 잃은 운석의 행렬 수줍어 한밤에 고개를 들고 밭둑에 피어나는 달맞이꽃아 적막에 잠든 고향 마을에 은하수 따라 흐르던 그리움 이제는 아스라한 추억 너머로 꿈길에 더러 거니는 그해 여름밤.

좋은 시 모음 2023.02.20

접시꽃 당신

접시꽃 당신 도종환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

좋은 시 모음 2023.02.20

배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좋은 시 모음 2023.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