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슬픈 눈(雪)

신사/박인걸 2023. 1. 28. 19:15
  • 슬픈 눈(雪)
  •  
  • 일렬로 서서 도시 거리를 비추는 가로등에
  • 함박눈이 벌떼처럼 덤벼들고
  • 두꺼운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은 사람들이
  • 종종걸음으로 멀리 사라진다.
  • 노량진역 앞길에 늘어선 플라터나스가
  • 오돌오돌 떨던 그해 겨울에는
  • 함박눈이 내가 탄 시내버스를 따라왔고
  • 봉천동 달동네 재래식 화장실에
  • 줄을 서서 순번을 기다리던 그해 밤에는
  • 싸락눈이 나의 발등을 시리게 했다.
  • 나는 지금 보도블럭에 내린 눈을 밟으며
  • 아름답지 않았던 옛 추억을 떠올린다.
  • 문풍지 파르르떨던 겨울 밤에
  • 홋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떨던 어린시절이
  • 차라리 아름답게 다가온다.
  • 가난한 사람이 사는 동네에 내리는 눈은
  • 전쟁터에 쏟아지는 연막 연기다.
  • 가루눈이 언덕길을 지우던 밤에
  • 연탄가스에 죽은 옆집 소녀 소식에
  • 흐르는 눈물을 하염없이 닦아야 했다.
  • 어느 해 시청앞 노숙자가
  • 눈을 뒤집어쓴채 꽁꽁얼어있었다.
  • 눈은 이렇게 밤새도록 내리려나
  • 가여운 사람들이 눈길에 미끄러져
  • 어디론가 실려가지 않으면 좋겠다.
  • 오늘 밤 내리는 함박눈은
  • 슬픈 기억을 많이 소환하고 있다.
  • 202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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