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상처(傷處)

신사/박인걸 2022. 9. 15. 22:42
  • 상처(傷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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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연이 출렁이는 길가에서도
  • 검푸른 잎을 자랑하던 플라터나스 한 그루
  •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 새벽길을 걷다 보니 쓰러졌다.
  • 한순간 무너져 내린 밑동은
  • 세월이 갉아먹어 썩고 있었다.
  • 잎은 무성하고 가지는 푸르렀는데
  • 그것은 무너지지 않으려는 의지였을 뿐
  • 아무도 모를 병을 홀로 앓고 있었다.
  • 바람이 불던 밤에도 으젓했고
  • 별이 스러지던 날에도 달빛에 빛났다.
  •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에는
  • 우산이 없어 그늘에 피한 적이 있다.
  • 어디 나무뿐이랴
  • 화려한 옷차림에 온화한 미소지으며
  • 아무런 근심 없어 보이는 사람도
  • 마음에 깊은 상처 한두 개 끌어안고
  • 겉으론 내색을 않을 뿐이다.
  • 쏟아져 내리는 풋감처럼
  • 바람에 힘없이 쓰러지는 갈대처럼
  • 상처가 덧나는 날에는 스러질거다.
  • 아무렇지도 않았던 저 나무가 쓰러진 건
  • 역시 숨겨놓은 상처가 넘어트린 거다.
  • 상처가 목숨을 앗아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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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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