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새
허공을 건넌 해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땅거미 염색물처럼 번지는데
아직 쉴 곳을 못 찾은 참새 떼들이
마로니에 가지앉아 법석을 떤다.
매양(每樣) 이맘때면
어릴 적 잃어버린 고향이 눈에 밟히고
꼴 짐 지고 언덕을 오르시던
가여운 아버지 어깨가 맘에 걸렸다.
큰 암소가 서걱대며 꼴을 삼킬 때면
못마땅한 눈짓으로 나는 소를 흘겨보았다.
저녁연기는 목적 없이 피어오르고
동네 개들은 눈치도 없이 짖어 댈 때면
지친 새들은 처마 밑을 파고들었다.
그 시절 핍절하여 좁쌀 한 줌이 아쉬운 나는
배고픈 새들에게 먹이 한번 못줬다.
이제는 저녁 새들이 앞마당을 서성일 때면
맘에 걸린 나는 빵가루를 훌훌 던진다.
그래야 내 맘에 새들이 날아오르고
귓가에 새들의 노래가 맴돌기 때문이다.
오늘은 집비둘기들도 날아왔다.
2021.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