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가을도 간다.

신사/박인걸 2020. 11. 4.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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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도 간다.

 

아파트 그림자가 한낮인데도

공원 전부를 점령한 채 퇴각하지 않는다.

참수를 당한 마로니에 나무는

황갈색 피를 뚝뚝 흘리며 죽어간다.

머리 빠진 모과나무는 몇 개의 알을 품고

미친 여자처럼 몸을 흔든다.

척추를 앓다 이사 온 소나무들이

황달에 걸려 옆으로 눕고 있다.

주차장에 사납게 뒹구는 가을 쓰레기들은

알맹이는 빼먹고 버린 껍질들이다.

빨갛게 익은 단감나무아래

얼굴을 알 듯 한 두 여자가 마주서서

무슨 말인지 지껄이는데

가을 무늬가 원피스를 도배했다.

단풍잎 떠내려 오던 시냇물에

맨손으로 빨래하던 어머니 차가운 손으로

냇가에 피운 모닥불에 구운

고소한 강냉이 먹던 가을이 떠오른다.

가을 기온을 태양이 무섭게 빨아드리고

밤이면 별들은 찬 공기를 내뱉는다.

한 해살이 풀들은 화단에 누우며

짧은 운명에 대해 깊은 토론을 벌인다.

그늘 뒤에 숨은 단풍나무 두 그루

해마다 진한 옷을 입고 순직하는데

새로 맞춘 수의가 작년보다 더 뜨겁다.

금년에 볼 마지막 국화(菊花)가

정문에 샛노랗게 도열(堵列) 한 채

떠나가는 가을을 전송한다.

내 마음에서도 가을이 지워지고 있다.

202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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