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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處暑)
분꽃이 담장아래 붉게 피어
긴 장마 진 후 일광(日光)에 졸고
참매미 자지러지게 느티나무 숲을 흔든다.
지붕을 오르던 나팔꽃은
아침 햇살에 고개를 숙인 후 입을 다물고
뙤약볕에 괴로운 잠자리는
어느 장대 끝에 앉아 독백을 즐긴다.
조명처럼 쏟아지는 늦여름 햇살은
지친 아스팔트를 엿가락처럼 녹인다.
지독한 코로나가 무장공비처럼 출몰해도
금년 여름 늦더위는 레코드처럼 재현된다.
다만 성장하는 것과 늙어가는 것들 사이에
노인은 왜 점점 수척해 가는지
끝물 포도송이처럼 스스로 왜소함을 느낀다.
중천의 태양은 용광로보다 더 이글거리고
푸른 숲은 파도 되어 출렁이는데
기력이 쇠한 한 노인은
힘없는 부채질로 외로움을 쫓는다.
오토매틱 승용차들은 쏜살같이 질주하고
공항 여객기들은 추진력을 받아 하늘을 뚫는데
연식(年式)이 오래 된 무릎에서는
앉고 일어설 때 힘줄이 당긴다.
아! 금년 처서(處暑)는 노인에게는
또 하나의 두려운 약봉지를 주려나보다.
20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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