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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밭
사방을 둘러보아도 산은 겹겹이 일어섰고
바람도 탈출하기 힘든 궁벽산촌에는
해마다 이맘때면 감자 꽃이 파도를 탄다.
한 여름에도 서늘한 내륙 분지에는
초록 빛 감자가 흙속에서 꿈을 키우고
쏟아지는 6월 햇살은 호박꽃을 피우지만
밭이랑에 앉아 구슬땀을 흘리던
어머니의 한숨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온다.
소가죽 보다 더 질긴 궁핍에 눌려
잔인한 세월을 연명(延命)으로 버티며
호미 날이 다 닳도록 흙을 파시던 어머니와
가난의 무게에 눌려 진학을 포기하고
몸무게보다 무거운 생계를 짊어졌던
마을 소년 소녀들의 눈동자가
감자 꽃에 맺힌 이슬방울처럼 어른거린다.
영동고속도로 차창으로 스쳐가는
진부 감자밭 풍경에 짙은 낭만이 흐르지만
설움과 눈물로 감자 꽃을 피우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굶주림의 비명이나 배고픔의 설움들도
이제는 추억의 한 페지로 남아 있지만
그래도 감자밭 옆길을 지나노라면
아물지 않은 상처가 명치끝을 누른다.
20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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