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허무함에 대하여

신사/박인걸 2019. 12. 8.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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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함에 대하여

 

겨울이 집어삼킨 숲길에는

낙하한 가랑잎들만 처연(悽然)하고

텅 빈 숲은 한 없이 쓸쓸하다.

뭣 때문에 이 숲은

지나간 시절 그토록 분주하였나.

물기 오른 나무를 매만지며

치미는 새순을 치하하였고

곱디곱게 피어나는 꽃송이들을

동경어린 눈빛으로 응시했었다.

억만 잎을 매단 채 바람에 일렁일 때

그 정취에 흠뻑 빠져들고

지독하게 쏟아지던 여름 장마 때면

산안개 피어나는 숲은 몽환이었다.

모든 것을 도난당한 지금

빛바랜 잎 하나 없는 숲에는

삭막함과 고독함이 무겁게 내려앉고

온갖 상처 입은 나무들만 전상병처럼

허리를 굽은 채 앓고 있다.

지난 계절 내내 일궈온 소유를

한 톨 없이 도난당한 숲에는

황량한 겨울바람만 휘저을 뿐

허무함만 가랑잎과 함께 뒹군다.

2019.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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