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낙엽에게

신사/박인걸 2019. 10. 1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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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에게


            시인/박인걸  

 

웃으며 가시라.

일생을 흙 한 번 밟지 않고

아무도 오르지 못할 자리에서

매일 춤을 추며 살지 않았소.

꽃 피던 날에 고운 향에 취해 살고

비 오던 날에는 촉촉이 젖어

바람 부는 날이면 흔들릴지라도

눈부신 햇살에 빛나지 않았소.

잡초로 태어나 밟히고

뜯어 먹히며 파 뒤집히다

제명을 채우지 못하고 사라진

들풀들이 허다하다오.

여름 태풍에 갈기갈기 찢기고

자 벌레에게 갉아 먹히며

구멍 뚫린 잎 새로 바람이 술술 새도

오물이 튀지 않는 지상(地上)

우러러보는 영토(嶺土)이니

특은(特恩)을 누린 삶일 찐대

아무 말 말고 떠나가시라.

아우성이 빗발치는 땅에는

핏발선 눈동자들이 눈심지를 곧게 세우고

존망(存亡)의 위험지대에서

전선의 초병(哨兵)처럼 지낸다오.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으니

오돌 오돌 떨지 않았으니

황홀한 옷 갈아입었으니

아무 말 말고 떠나기시라.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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