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낙엽에게
시인/박인걸
웃으며 가시라.
일생을 흙 한 번 밟지 않고
아무도 오르지 못할 자리에서
매일 춤을 추며 살지 않았소.
꽃 피던 날에 고운 향에 취해 살고
비 오던 날에는 촉촉이 젖어
바람 부는 날이면 흔들릴지라도
눈부신 햇살에 빛나지 않았소.
잡초로 태어나 밟히고
뜯어 먹히며 파 뒤집히다
제명을 채우지 못하고 사라진
들풀들이 허다하다오.
여름 태풍에 갈기갈기 찢기고
자 벌레에게 갉아 먹히며
구멍 뚫린 잎 새로 바람이 술술 새도
오물이 튀지 않는 지상(地上)은
우러러보는 영토(嶺土)이니
특은(特恩)을 누린 삶일 찐대
아무 말 말고 떠나가시라.
아우성이 빗발치는 땅에는
핏발선 눈동자들이 눈심지를 곧게 세우고
존망(存亡)의 위험지대에서
전선의 초병(哨兵)처럼 지낸다오.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으니
오돌 오돌 떨지 않았으니
황홀한 옷 갈아입었으니
아무 말 말고 떠나기시라.
2019.10.18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