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기와 집 여인
높은 울타리에 갇혀
우배(友輩)없이 살아온 유년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도 막혀
적막강산의 유배지였으리
양친의 흉사(凶事)에
심장 깊숙이 생긴 상처들
결연한 의지로 꿋꿋했으나
세월의 낙엽에
묻혀버린 트라우마
밤하늘의 외로운 별
망망대해의 고독한 섬
죽음보다 무서운 고독 앞에
이를 악물어 분노를 참았으나
터져 나오는 눈물
홀연히 다가온 손길
자애한 모정을 빙자할 때
순순히 빗장을 풀고
깊은 상처를 내 보였으나
둔갑한 여우인줄 몰랐네.
직관과 오관이 탁월하고
용맹과 기상이 가상하며
자애로움이 어미 같아
청기와 집 주인이 되었지만
쓸개와 간을 뺏겼네.
아! 불쌍한 여인이여
지독한 운명의 소용돌이여
대를 잇는 불행이여
가문의 비운이여
이미 정해진 그대의 몫이여!
내려놓으라.
움켜잡은 손을 펴라.
그 집이 그대의 집이 아니니
권한을 행사하지 말라.
더 이상 자신을 믿지 말라.
훌훌 털고 마음을 비우라.
격동의 파고를 보라.
밀려오는 쓰나미를 보라.
이 힘든 아포리아(aporia)를
가냘픈 여인의 힘으로
풀어낼 수 있는가.
죽으면 살고
살면 죽는다했다.
역설의 진리를 믿으라.
다음을 겁내지 말고
과감하게 결단하라.
국운은 기로에 섰고
오천만 명운이 비틀거린다.
시간은 모자라고
배는 침몰하고 있다.
청기와 집 여인이여
민심(民心)에 귀를 기울이시라.
2016.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