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청기와 집 여인

신사/박인걸 2016. 11. 7. 12:24

청기와 집 여인

 

높은 울타리에 갇혀

우배(友輩)없이 살아온 유년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도 막혀

적막강산의 유배지였으리

 

양친의 흉사(凶事)

심장 깊숙이 생긴 상처들

결연한 의지로 꿋꿋했으나

세월의 낙엽에

묻혀버린 트라우마

 

밤하늘의 외로운 별

망망대해의 고독한 섬

죽음보다 무서운 고독 앞에

이를 악물어 분노를 참았으나

터져 나오는 눈물

 

홀연히 다가온 손길

자애한 모정을 빙자할 때

순순히 빗장을 풀고

깊은 상처를 내 보였으나

둔갑한 여우인줄 몰랐네.

 

직관과 오관이 탁월하고

용맹과 기상이 가상하며

자애로움이 어미 같아

청기와 집 주인이 되었지만

쓸개와 간을 뺏겼네.

 

! 불쌍한 여인이여

지독한 운명의 소용돌이여

대를 잇는 불행이여

가문의 비운이여

이미 정해진 그대의 몫이여!

 

내려놓으라.

움켜잡은 손을 펴라.

그 집이 그대의 집이 아니니

권한을 행사하지 말라.

더 이상 자신을 믿지 말라.

훌훌 털고 마음을 비우라.

 

격동의 파고를 보라.

밀려오는 쓰나미를 보라.

이 힘든 아포리아(aporia)

가냘픈 여인의 힘으로

풀어낼 수 있는가.

 

죽으면 살고

살면 죽는다했다.

역설의 진리를 믿으라.

다음을 겁내지 말고

과감하게 결단하라.

 

국운은 기로에 섰고

오천만 명운이 비틀거린다.

시간은 모자라고

배는 침몰하고 있다.

청기와 집 여인이여

민심(民心)에 귀를 기울이시라.

201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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