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설교

염려하지 말라(마6:25-34)

신사/박인걸 2023. 3. 14. 20:24
  • 염려하지 말라(마6: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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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troduction』
  • 염려(念慮)는 ‘앞일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서 걱정하는 일, 또는 그런 걱정, 근심, 고민(苦悶), 괘념(掛念)을 의미하며’, 영어로는 염려를(worry, concern, anxiety, uneasiness), 걱정 불안 등을 의미합니다.
  • 헬라어에서는 염려를(메림나)라고 하는데 걱정, 불안, 두려움의 의미입니다.
  • 여러분 중에 염려나 근심, 걱정이나 불안, 두려움이나 고민이 없는 분이 있습니까?
  • 근심없는 분만 아멘 해보세요.
  • 솔직히 말해서 염려와 근심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 대통령도, 장관도, 국회의원도, 모두 근심이 염려가 있고, 대 그룹의 총수나 학교 선생님도 염려가 있습니다.
  • 해맑은 어린아이들도 염려가 있습니다.
  • 학교 가는 것이 힘들고, 유치원 가는 것이 힘들고, 어린이집에 가는 것이 힘들어서“엄마 나 오늘 어린이지 안 가면 안돼?”
  • 엄마가 “돼” 그러면 신이 나서 깡충깡충 뜁니다.
  • 우리 예수님은 염려와 근심을 했을까요? 안했을까요? 했습니다.
  • 마가복음 14장 33-36절에“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실 때 세 제자에게 솔직한 마음을 고백을 하셨습니다. “고민(苦悶)하여 죽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 우리 주님도 고민하셨는데 우리는 두말할 것 없습니다.
  • 바울 사도는 “항상기뻐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6-18)고 했는데, 우리의 삶은 “항상 염려하라. 쉬지말고 걱정하라. 범사에 근심하라.”로 살아갑니다.
  • 오늘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일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염려, 근심, 걱정, 고민, 갈등, 번민, 불안, 두려움 등의 감정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처리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 『change sentence』
  •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 이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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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염려하지 않는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마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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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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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ext background』
  • 본문의 배경을 알아야 주님이 염려하지 말라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는 주님의 산상수훈입니다.
  •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설교가 다섯 번 나옵니다.
  • 이것을 5대 강화(講話)라고 합니다. 강화란 쉽게 풀어서 설명한다는 뜻입니다. 산상수훈은 첫 번째 설교입니다.
  • 산상수훈에서 여덟 가지 복, 성도의 생활과 율법, 구제, 금식, 기도, 순전(純全)의 문제, 율법준수, 외식(外式)의 문제, 금식과 기도, 구제의 문제, 그리고 재물의 문제를 설교하였습니다.
  • 주님의 설교는 7장까지 이어지는데, 설교의 대상은 유대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 그들은 모세로부터 1,500간 유대교를 믿었습니다.
  • 그들의 경전은 모세 5경과 예언서와 시편입니다.
  • 유대교인들은 바벨론 포로 기간과 헬라의 통치를 받으면서 극단적 유대교로 거듭났고,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한다는 명목 아래 교인들을 종교의 노예로 삼았습니다.
  • 종교 경찰을 동원하여 강압적인 율법준수를 강요했고, 유대교 지도층의 사람들은 모든 신앙생활이 외식과 형식으로 죽은 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 예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하신 말씀 가운데 ‘무거운 짐’은 1차 의미는 죄의 짐이 아니라 율법(律法)의 짐을 의미합니다.
  •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 그 정도로 당시 유대교가 타락했습니다.
  • 그렇다면 본문에서 염려하지 말라는 의미는 어떤 배경이 있을까요?
  • 사실 산상수훈의 설교 대상은 일반 성도가 아닙니다.
  • 제자들이었습니다.“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마5:1)라고 하였습니다.
  • 제자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부유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 베드로 안드레는 배가 있었고 요한 야고보는 삯군을 둘 정도로 부유했고 마태는 부자였습니다.
  • 그러나 이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 베드로, 요한, 안드레, 야고보는 배를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섰고, 마태는 세리 공무원이었는데 직장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섰습니다.
  • 그런 그들이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문제는 물질이었습니다.
  •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되었을 때, 음식을 무슨 돈으로 사먹을까?
  • 돈이 없는데 옷은 어떻게 사입을까? 그런 염려를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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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uminate story』
  • 염려의 문제는 제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 오늘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모두 염려가 있습니다.
  • 집 문제, 건강 문제, 자녀 문제, 직장문제, 사업문제, 취직문제, 승진 문제, 노후문제, 부부간의 문제, 국가문제, 신앙 생활문제, 등등 수없이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 매일 근심과 걱정이 사라질 날이 없습니다.
  • 근심을 하도 많이 해서 눈썹 사이에 내 천(川)자가 생깁니다.
  • 어린아이가 풀이 죽어있고, 얼굴이 핼쑥 해져서 물었더니 “목사님 고민이 많아서 그래요.”
  • “어린아이가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니?”
  • 그랬더니 “말도 말아요. 죽고 싶어요. 공부가 너무 힘들고 학교 가는 일이 죽는 것만큼 싫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토록 많은 근심, 걱정, 고민, 염려로 가득합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 염려하면서 사는 것이 맞습니까? 염려하지 않는 것이 맞습니까? 염려하는 것이 맞습니다.
  • 오히려 염려하지 않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 염려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 제가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은 예수께서 분명히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왜 염려하라고 하십니까?
  •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앞뒤 문맥과 예수님 설교의 상황 화를 무시하고 성경 말씀을 일반화시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 생각해 보세요. 집을 사려고 계약금을 걸었는데 중도금과 잔금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 사는 집이 빠지지 않고, 은행에 알아보았더니 신용등급이 낮아서 필요한 대출을 못 해주겠다고 한다면 염려가 됩니까? 안됩니까?
  •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더니 암 초기라고 진단이 나왔습니다.
  • 고민이 됩니까? 안됩니까?
  • 빚을 내서 가게를 냈는데 매출이 오르지 않아 매월 자신의 생활비는 고사하고 월세도 못 낼 형편이면 고민이 됩니까? 안됩니까?
  • 고민이 됩니다. 염려됩니다. 근심됩니다.
  • 근심 정도가 아니라 밤에 잠이 오지 않습니다.
  • 그런데 주님이 염려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염려하지 말아야지 한다고 염려가 사라집니까? 사라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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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spiration message』
  •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지혜가 있습니다.
  • 첫째, 염려가 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 성경에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몇 군데 있습니다.
  • 본문과 눅12:15, 빌4:16, 등에 있습니다.
  • 그러나 그곳에서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앞뒤 문맥을 보면 삶의 문제들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 둘째, 염려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 염려해서 문제가 깨끗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 반대로 염려를 하지 않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 셋째, 염려는 우리 몸에 해롭다는 것입니다.
  • 건강을 상하고 병에 걸리며 염려와 스트레스로 인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 넷째, 영적 경건과 신앙생활에 해가 됩니다.
  • 믿음이 자랄 수 없으며, 사단의 시험대상이 됩니다.
  • 재리(財利)와 탐욕에 끌려 시험에 빠지고 신앙이 파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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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nge sentence』
  • 염려는 이렇게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 이제 염려의 문제를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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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염려하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일까?(마6:3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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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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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dentifying the cause』
  • 교인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거나 상황 화를 무시하고 명령이니까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 것은 무조건 죄라고 생각합니다.
  • 더 나아가 성경에 있는 사건이나 기적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고 믿으며,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자신의 믿음이 적어서라고 단전하는 경향이 농후(濃厚)합니다.
  • 기도하기만 하면 모두 응답을 받고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적거나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교인들은 어떤 기적이나 기도 응답에 대한 노하우나 방법을 찾아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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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y experience story』
  • 성경의 사건을 예로 들겠습니다.
  •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마감하고 가나안에 입성할 때 제일 먼저 여리고 성을 무너트렸습니다.
  • 하루 한 번씩 성을 돌고, 7일째 되는 날을 일곱 번 돌았습니다.
  • 제사장들의 나팔소리에 맞춰 함성을 지를 때 성이 무너졌습니다.
  • 이 사건을 보고 어떤 교회나 교인은 여리고 성을 해결하기 힘든 문제로 보면서 자신도 그 사람들처럼 돌면서 기도하면 성이 무너지듯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한국교회에는 『땅 밟기 기도』가 있습니다.
  • 예배당 지을 땅을 사게 해 달라면서 동네에 맘에 드는 땅이나 건물을 새벽기도 마치고 교인들이 빙빙 돌면서 기도합니다.
  • 그렇게 해서 진짜 땅을 산 교회가 있습니다.
  • 그러자 많은 교회가 그 방법을 따라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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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볼 일이 있습니다.
  • 여리고 성은 무너졌는데 그다음에 공격한 아이 성은 왜 안 무너졌습니까?
  • 아니, 아이 성은 하나님께서 돌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 전쟁해서 빼앗게 하였습니다.
  • 여리고 성이 무너진 사건은 성경 가운데 단 한 번입니다.
  •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서 성을 돌라고 했습니까?
  • 백성이 돌지 않고도 우리 주님은 바벨탑을 허물 듯이 입김으로도 무너지게 할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왜 그 성을 7일 동안 돌라고 하셨을까요?
  • 그것은 백성의 순종, 일치단결, 한마음으로 예배,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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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와 같은 의미를 젖혀두고 무조건 따라 하면 된다고 생각하여 기술이나 방법, 혹은 노하우를 찾아내려 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 한나가 기도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하니 자신도 그렇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무조건합니다.
  • 히스기야가 병이 나았다고 하니 자신도 기도하면 병이 낫는다고 생각합니다.
  • 나만이 문둥병을 고쳤으니 나도 그렇게 하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 하나님은 지금도 기적이 일어나게 하시고, 초자연적인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약화하였거나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 다만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맞을 때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총이 기적입니다.
  •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찾지 않고 방법이나 기술을 찾으려 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 그래서 100일 기도를 드리고, 1,000일 기도를 드리고, 1주일 금식기도를 하고, 작정 기도와 밤샘 기도를 합니다.
  • 그런데 그렇게 힘쓰고 애썼는데 응답이 없거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대게는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 혹은 정성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 혹은 아직 죄를 모두 회개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 또는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 또는 기도가 약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 물론 위에서 열거한 내용이 모두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 그러나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 반드시 믿음이 없거나 기도가 부족해서는 아닙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건을 믿음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 우리가 염려하는 것도 믿음이 없어서 염려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은 태도는 아닙니다.
  • 오히려 염려하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도모하게 됩니다.
  •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힘쓰게 됩니다.
  • 염려하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아이디어를 만들어냅니다. 염려하기 때문에 열심히 기도하며 지혜를 구합니다.
  • 염려하기 때문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냅니다.
  • 그렇게 해서 인간사회는 발전해 왔고, 수많은 발병품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 새로운 제도가 생겨났고 인류의 문명이 발전해 왔습니다.
  • 현실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에 대한 염려와 근심이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탄생시켜 온 것입니다.
  • 만약 어떤 문제에 대한 염려와 근심이 없었다면 인간은 여전히 원시시대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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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nge sentence』
  • 그렇다면 주님께서 염려하지 말라 이는 모두 이방인이 하는 것이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모두 먹이시는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라고 하였습니다.
  • 주님이 말씀하신 염려하지 말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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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우리는 염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마6: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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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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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rd expose story』
  • 염려에 대한 우리 주님의 의도를 따라 사는 것이 염려를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 예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를 찾아내서 그 목적을 따라 사는 것이 우리의 태도,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 그렇다면 주님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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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째, 염려의 폐해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 염려의 어원적 의미는 ‘갈라놓다. 쪼갠다.’의 의미로서 마음을 갈라놓고 쪼갠다는 뜻입니다.
  • 인격을 분열시키고, 잠을 못자게 하고, 몸이 마르게 하고, 깊은 갈등과 고민에 빠지게 하여 집중력을 잃게 하고,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게 합니다.
  • 그 결과 자신의 건강에 해가 오고, 가정과 인간관계에 해가 오며, 영적 생활에 해가 오며, 더 나아가 인간의 수명에까지 영향을 줍니다.
  • 기독교가 추구하는 구원과 행복의 삶을 파괴하고 불행을 끌어들이는 것이 염려입니다.
  • 그래서 염려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 염려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 않습니다.
  • 오히려 더 복잡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 그래서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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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둘째,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야 합니다.
  • 31절에“그러므로”는 28절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 공중의 나는 새와 들에 핀 백합화를 하나님이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을 모두 하나님이 관리한다는 것입니다.
  • 모든 식물은 비와 바람과 빛을 통해 생명을 유지, 번식시킵니다.
  •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게 살게하십니다.
  • 모든 동물과 생물은 먹이사슬을 통해 관리하십니다.
  •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하나님이 모두 먹이시고 입히십니다.
  • 그래서 먹는 문제, 마시는 문제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 우리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면서 굶어죽지 않고 지금 살고 있지 않습니까?
  • 물론 잘살고, 못살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사는 것과 좋지 못한 음식을 먹으며 사는 것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하루 밥세끼 먹으며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 그렇다면 주님이 의식주 문제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진정한 의도는 무엇일까요?
  • 육신의 문제 못지않게 영적인 문제에 더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 솔직히 우리가 매일 직장 생활하고, 사업하고, 가게를 운영하고, 돈을 버는 일은 모두 의식주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 자녀가 공부를 하고, 우리는 자기 성장을 위하여 끝없이 공부와 노력을 합니다.
  • 따지고 보면 모두 의식문제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 의식주 문제는 결국 돈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죽고 마는 것입니다.
  • 우리 인생이 오직 돈을 벌어서 의식주 문제만 해결하다가 사라진다면 너무 불행하지 않습니까?
  • 의식주문제보다 더 차원이 높은 세계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세계가 무엇입니까?
  • 그것이 곧 영적인 세계입니다.
  • 영적인 세계는 육신의 세계를 능가하며 지배합니다.
  • 영적인 세계의 핵심은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사는 것입니다.
  • 인간의 욕망, 욕심, 야망을 모두 내려놓고 사는 것입니다.
  • 세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 어린아이가 먹고 입는 문제에 대해 염려하지 않습니다.
  • 부모가 해결해 주기 때문입니다.
  • 마찬가지로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맡긴다면 모든 염려를 내려놓고 살 수 있습니다.
  • 우리 모두 주님께 삶의 염려를 맡기고 살기 바랍니다.
  •  
  • 셋째, 하나님나라를 선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러 오셨고, 그것은 곧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러 오셨습니다.
  • 하나님 나라의 속성은 의, 평강, 희락(롬14:17)입니다.
  • 염려하는 자에게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을 수 없습니다.
  • 의와 희락과 평강은 근심과 걱정이 전혀 없는 삶을 의미합니다.
  •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이셨습니다.
  • 각종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 절망에 처한 자들에게 참 소망을 주었습니다.
  • 가난하고, 포로 되고, 눈멀고, 눌린 자들을 모두 고쳐주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 염려, 근심, 걱정, 고민, 괘념은 모두 마귀와 사단이 주는 속성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육적으로 병들고, 정신적으로 혼미하게 하며 영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게 합니다.
  • 그 결과는 저주(詛呪)와 파멸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 모든 염려를 내려놓기 바랍니다.
  • 넷째,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 본문 33절을 보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 말씀하시고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34)고 하였습니다.
  • 이는 하루하루를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믿음으로 살라는 뜻입니다.
  •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일에 대하여 소급하여 염려하지 말고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님을 의지하고 살 듯이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 우리는 내일도 오늘처럼 살게 됩니다.
  • 1년 후에도 오늘처럼 살 것입니다. 아니 더 발전할 것입니다.
  • 더 잘 될 것입니다. 더 성장할 것입니다. 더 복되게 살 것입니다.
  • 각가지 문제에 봉착(逢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도 해결 할 것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해결할 능력을 주셨습니다.
  • 내 주변에 사람도 붙여 주셨습니다.
  •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누군가를 통해 해결할 길을 열어주십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외상으로 근심, 걱정, 염려하지 말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인도하였습니다.
  • 요셉, 모세, 다윗, 엘리야, 엘리사를 모두 우리 하나님은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 이제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아무 염려 없이 사는 우리 모든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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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inal conclusion』
  • 하나님 나라 백성은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사는 것입니다.
  •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염려 거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 늘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던 사람이 어떻게 하면 좀 더 정결하게, 좀 더 거룩하게 살 수 있을까를 염려하게 됩니다.
  •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던 사람이 이제 성령에 목이 말라 헐떡이게 됩니다.
  •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더 갈급하여 몸부림하게 됩니다.
  • 기도의 갈증, 말씀의 배고픔, 심령의 목마름, 하나님을 향한 갈망, 이러한 것이 성도들이 바라야 할 신령한 염려입니다.
  • 진정으로 우리 모두의 바람이 여기에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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