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긴긴 여로

신사/박인걸 2021. 8. 16. 19:35
  • 긴긴 여로
  •  
  • 내가 거기서 첫출발하던 날
  • 작은 마을은 텅텅 비어있었고
  • 살짝 드러누운 비탈 밭이랑에는
  • 흰 눈이 광목처럼 널려있었다.
  • 문어발처럼 뻗어 내린 산맥은
  • 숫한 이야기들을 골짜기에 채웠고
  • 그 속 에서 자라온 나는
  • 자연이 준 심장으로 계절을 노래하였다.
  • 꽃 비 내리던 오솔길과
  • 단풍잎 쏟아지던 오르막길을
  • 아무 목적도 없이 걸어도 행복했다.
  • 눈이 퍼붓던 벌판을 움츠리고 걷던 날에는
  • 여름 소낙비를 그토록 그리워했다.
  • 느릅나무에서 속잎이 돋아나던 계절에
  • 내 꿈을 백 척 가지위에 걸었고
  • 늦가을 달이 호수에서 목욕하던 날에
  • 콜럼버스의 후예가 될 것을 결심했다.
  • 지독한 탐험의 세월은 낡은 일기장에 갇혔고
  • 아슬아슬한 삶의 곡예들은
  • 언제나 나를 새로운 세상에 세웠다.
  • 긴 긴 여로에 이제는 기운이 빠졌지만
  • 아직은 가득한 비경을 따라
  • 마음에 작정한 그곳까지 걸어야 한다.
  • 202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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