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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서(戀書)
연정도 연서도 옛이야기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곱게 쓴 연서에
우표 한 장을 붙여 붉은 통에 집어넣고
설레는 맘으로 뒤돌아섰다.
우연히 알게 된 소녀(少女)의 주소로
내 마음을 가지런지 엮어 보냈는데
뜻밖의 날아 온 분홍 봉투에 난 소스라쳤다.
자전거 탄 우체부가 달려 올 때면
튀어나온 눈알은 자전거 바퀴와 함께 돌고
내 이름이 적힌 편지를 받아 쥘 때면
온 세상이 내 품으로 달려들었다.
줄줄이 읽어 내려갈 때면 활자에 꿀이 흐르고
깊어지는 연정에 가슴은 발롱거렸다.
새빨간 고추처럼 익어가던 연서도
어느 날 전깃줄처럼 끊겼다.
젊은 날의 한 자락 행복한 추억으로
책갈피에 은행잎처럼 고이 간직한 채
세월은 자꾸자꾸 흐르고 또 흘러
연정도 연서도 빛이 바랬고
젊은 날 뛰던 심장 박동도 이제는 멎었다.
그리움도 애잔함도 기다림도 사라진
노인의 가슴속에는 농밀한 감회만 솟는다.
귀뚜라미 우는 계절이 오면
노인의 마음은 뒤숭숭하기만 하다.
오늘따라 가을밤은 더욱 길게만 느껴진다.
20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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