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맷재
자작나무 우두커니 서서
말없이 길손을 지켜보고
우거진 솔밭사이엔 언제나
깊은 무서움이 서려있었다.
개 짓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갯마루에는 머리칼이 쭈뼛 서고
안개가 길을 가로막을 때면
두려움이 등골로 내려앉았다.
헉헉 이며 이 재를 넘을 때면
잔등에 땀이 고이지만
연골이 굳어가던 소년의
영롱한 꿈도 눈동자에도 고였다.
재는 앞길을 가로막는 절벽이지만
필연의 부딪침으로 맞서서
한발 한발 오르다 보면
어느덧 정상을 밟고 서 있었다.
뒤돌아보면 그때 넘던 재는
먼 인생길의 서막이었다.
수많은 영(嶺)을 넘고 넘으며
오히려 그때를 그리워한다.
2016,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