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집으로 가는 길

신사/박인걸 2020. 12. 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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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그 재(岾)를 넘어가야  하는일이 두려웠다.

검은 숲을 지날 때 공동묘지도 무서웠다.

오르막 길 서른 구비에는

산 벚꽃나무 우거져 길을 지웠다.

첫눈이 포실포실 내리 던 날

아이들 신작로를 강아지처럼 짓밟지만

십 오리 길 걸어가야 하는 나는

언제나 두려움과 초조가 엇갈렸다.

적요한 침묵이 흐르는 그 길에는

벽처럼 산들이 일어서서 나를 위협했고

가끔씩 지나가는 산 짐승만이

아무 말 없이 나를 지켜 주었다.

아득한 벼랑길 등지고 돌때

강바람 사정없이 볼을 때렸고

새들도 도망간 갈대숲에는

된 바람에 물이랑 치며 너울거렸다.

첫눈이 벌떼처럼 날아 내리거나

땅거미가 뒷마당을 밟으며 지나갈 때면

기억 공간에 저장된 낡은 단백질이

나쁜 추억을 거미줄처럼 뽑아 올린다.

이제는 첫 눈이 도시를 덮는다 해도

집으로 가는 길이 전혀 두렵지 않다.

그곳에 내 집이 사라져버렸다.

20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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