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배추국화

신사/박인걸 2020. 11. 30.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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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국화

 

어머니 누우신 무덤 앞에

배추국화 여러 포기 심어드릴게요.

봄이면 마당가에 새끼줄 치고

촘촘히 꽃을 심고 물을 주었지요.

삶이 고단하면 꽃에 붉게 입 맞추고

한(恨)이 목구멍을 가득 채울 때면

꽃잎 뜯어 하늘높이 뿌리시며

혼잣말로 무어라 중얼거리셨죠.

뿌연 안개가 가슴을 덮을 때면

골방을 찾아 그분께 빌고

절절한 고독이 양미간을 짓누를 때면

조각난 가슴을 꺼내 눈물로 닦으셨지요.

붉은 쇠못이 자주 심장을 찔러

익모초 생즙보다 진한 피가 솟을 때면

치맛자락을 찢어 가슴을 동여매고

어여쁜 꽃잎에 눈물을 부으셨죠.

즉흥성 슬픈 민요를 주워 성기며

바닷물 보다 더 짠 설음을 토해낼 때면

아직 연골이 여물지 않은 나는

어린 사슴처럼 어머니 치맛자락을 끌었지요.

맨발로 자갈길을 걸어가도

가슴을 찌르는 통증보다 덜 하다시며

어느 날 배추국화 꽃잎을 쥐어뜯던

어머니 눈동자에서 나는

잃어버린 세월의 고통을 읽었지요.

핏빛 세월의 아픔을 달래며 사시던

어머니 눈물이 그 꽃송이에 고였네요.

많이 그리운 내 어머니!

20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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