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한 해의 구부능선에서

신사/박인걸 2020. 11. 2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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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해 구부능선에서
  •  
  • 손을 뻗으면 정상에 닿겠다.
  • 뿌연 안개를 헤치며 허둥지둥 달려왔다.
  • 가쁜 숨을 헐떡거리며 숙명이기에 치달았다.
  • 발등을 보면 위태롭고
  • 뒤돌아보면 까마득한 비탈을 겁 없이 올라왔다.
  • 하루하루가 전쟁영화 화면처럼 바뀌고
  • 바람 부는 날이면 호흡이 가빴다.
  • 불확실성의 구름이 숲을 가득 채울 때면
  • 출구를 잃고 몇 번을 비틀거렸다.
  • 중턱을 넘어섰을 때 두려움이 그림자처럼 따라 붙고
  • 귀곡잔도를 지날 때는 머리끝이 곤두섰다.
  • 아픈 다리는 잘 따라와 주었지만
  • 머리는 자주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졌다.
  • 하루의 일몰이 취침을 허락할 때면
  • 정수리까지 솟아오른 혈압이 급 하강하고
  • 깊은 어둠이 이불처럼 나를 덮을 때면
  • 그날의 어지럼증이 사라졌다.
  • 하루도 찔리우지 않는 날은 없었다.
  • 가슴을 열어보면 긁힌 상처투성이다.
  • 양어깨를 짓누르는 몇 개의 짐이 괴롭혔고
  • 내 발자국을 밟고 따라 오는 소리가 있었다.
  • 네비게이션 없는 신호음이었다.
  • 그 소리는 나를 양심만큼 괴롭혔지만
  •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 준 기호(記號)였다.
  • 깨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수척하다.
  • 그래도 절벽에서 추락하지 않아 다행이다.
  • 겨울은 이미 시작되었어도
  • 아직 펄럭이는 나뭇잎들이 더러 있다.
  • 마지막까지 붙어 있는 작은 이파리들만
  • 내 희망에 꿈을 불어넣는다.
  • 년년(年年)이 내가 진 무게는 버거웠어도
  • 앙버티며 달려온 힘이 있다.
  • 그 힘은 나만이 아는 영원한 비밀이다.
  • 2020.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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