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농부(農夫)

신사/박인걸 2019. 7. 16.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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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農夫)

 

나의 아버지는 농부였다.

아침 해가 동해에서 잠잘 때

아버지는 쟁기를 들고 둑길을 걸었다.

어깨에 매달린 식솔이 무거워

짧은 여름밤 잠도 줄여야 했다.

부지런하고 억척스러워

누워 있는 것이 불안하였고

잡히는 대로 일을 해야

뒤주 간 곡식을 채울 수 있었다.

잦은 낫질에 베인 손마디는

꿰맨 고무신짝 같고

고된 호미질에 열 손가락은

아궁이 속의 부지깽이가 되었다.

모내기에 허리가 휘고

온 종일 피사리에 다리가 휘청인다.

한 여름 뙤약볕에 콩밭에 엎드리면

긴긴 해가 서산에 걸리도록

달개비를 뽑으며 땀을 쏟았다.

노예처럼 노동해도 소득은 줄어들고

춘궁기의 농부 가슴엔 고름만 고였다.

장대비가 쏟아지면 논둑을 지키고

여름가뭄에 가슴은 숯이 된다.

개미보다 더 열심히 일해도

쌓이고 늘어나는 것은 빚이었으니

에어컨 바람을 쐬며 쇼파에 앉아있노라면

아버지 생각에 죄스럽다.

2019.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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