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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農夫)
나의 아버지는 농부였다.
아침 해가 동해에서 잠잘 때
아버지는 쟁기를 들고 둑길을 걸었다.
어깨에 매달린 식솔이 무거워
짧은 여름밤 잠도 줄여야 했다.
부지런하고 억척스러워
누워 있는 것이 불안하였고
잡히는 대로 일을 해야
뒤주 간 곡식을 채울 수 있었다.
잦은 낫질에 베인 손마디는
꿰맨 고무신짝 같고
고된 호미질에 열 손가락은
아궁이 속의 부지깽이가 되었다.
모내기에 허리가 휘고
온 종일 피사리에 다리가 휘청인다.
한 여름 뙤약볕에 콩밭에 엎드리면
긴긴 해가 서산에 걸리도록
달개비를 뽑으며 땀을 쏟았다.
노예처럼 노동해도 소득은 줄어들고
춘궁기의 농부 가슴엔 고름만 고였다.
장대비가 쏟아지면 논둑을 지키고
여름가뭄에 가슴은 숯이 된다.
개미보다 더 열심히 일해도
쌓이고 늘어나는 것은 빚이었으니
에어컨 바람을 쐬며 쇼파에 앉아있노라면
아버지 생각에 죄스럽다.
2019.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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